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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치아 Apr 08. 2021

[작문연습] 배달

Delivery에 얽힌 노동에 대한 이야기

우리나라에 삼신할매가 있다면, 서양에는 황새가 있다. 황새가 굴뚝에 아이를 내려보내는 꿈을 꾸면 아내가 임신한다는 설화가 있다. 어른들은 아이는 어떻게 생기냐는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에 황새가 아기를 보자기에 싸 물어다 준다는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한다. 이렇게 황새는 일종의 ‘아기 배달부’가 된다. 그래서일까, 영어에서 아이를 낳는 행위, 정확히 말하자면 아기가 자궁 밖으로 나오는 분만은 배달과 같은 ‘delivery’라고 불린다. ‘분만하다’ 또는 ‘아이를 낳다’라는 동사도 역시 ‘배달하다’와 같은 ‘deliver’을 쓴다.


물론, 의사가 아이를 받는 행위를 ‘deliver’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분만이 delivery가 됐다는 것이 정설로 여겨진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있기도 전에 황새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나름 합리적인 추측일 테다. 배달과 출산 사이의 유사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어에서는 진통부터 마지막에 태반이 나오는 것까지의 출산 과정 전반을 ‘labor’이라고 부른다. 이는 ‘노동’과 같은 단어로, 아이를 낳는 행위를 농업사회부터 정착된 노동 개념의 효시로 여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배달과 출산에는 ‘노동’이라는 같은 뿌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출산을 노동으로 보지 않는 듯하다. 모든 노동에는 ‘임금’이라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 특히 출산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가장 중요하지만, 몸에 대한 제약이 수반되는 부담스러운 노동이기에 온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출산은 정당한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 그저 ‘신성한 모성애’, ‘생명의 아름다움’이라는 감언이설로 포장되어 여성의 ‘당연한 의무’로 장려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출산은 아이러니하게도 ‘경력단절’이라는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을 낳는다. 노동 이후의 삶을 보장해주는 고용보험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출산이라는 노동의 부담을 같이 짊어지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는 인구 데드크로스에 직면했다.   

   

황새들이 아기 배달을 포기하고 글로벌 택배회사로 업종을 변경했다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오래된 설화의 재해석이라는 면에서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현실에 워낙 충실한 해석이라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함도 존재한다. Deliver에는 ‘약속을 지키다’라는 뜻도 담겨있다. 황새들이 아기를 다시 배달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먼저 출산이라는 노동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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