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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희 Sep 13. 2022

주니어 PO의 첫 프로젝트

Kick-off, 개박살, 그리고 다시 Objective

목차

1. 왜 PO가 하고 싶어? : 자기소개 비슷한 것

2. 나만 설득된 kick-off : 첫 미팅은 이렇게만 안 하시면 됩니다

3. 우리 팀만의 Objective: 언제나, 꼭, 반드시 필요합니다




1. 왜 PO가 하고 싶어?

    컨설팅 펌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커다란 회의감이 찾아왔다. 반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을 돌이켜보니 해외 유사 서비스의 BM 및 user-flow 벤치마킹, 국내 P2P 결제 모델 리서치, 유저 FGI 수행 및 내부 데이터 분석.. 그래, 분명 회사에 필요한 일이었겠지만 "내 성과"라고 부를만한 결과물이 없는 건 여전했다. 나는 "내 일"과 "내 성과"를 찾아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는데 왜 아직도 수십 장에 달하는 장표와 노션 문서만이 내 산출물의 전부일까, 허탈하고 조급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라고 질문하면 답이 안 나온다. (삽질도 많이 했고 돈도 많이 썼다. 그 당시에 내 주변을 맴돌아준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5 Whys는 현상의 원인을 탐구할 때나 도움이 되는데, 나에게 필요한 건 원인이 아니라 해결책이었다. '앞으로는 뭘 하고 싶은데?'라는 질문에서 다시 시작했다. 나는 단순한 리서치 하나를 하더라도 implication을 찾아내는 것, 그래서 나만의 생각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execution을 통해서 내 생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하고 싶고, 만약 틀렸다면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내가 만든 장표들과 노션 문서에 담긴 message들은 제품팀에 전달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방향이 바뀌었고, 개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결국 실행 단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내가 고민한 내용은 무용지물이 된다. 아무리 섹시한 전략이 나와도 실행되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쓸모 있는 전략/기획을 하고 싶었고, 내가 유저들의 니즈를 제대로 짚어낸 게 맞는지 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product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 중심에는 Product Owner(혹은 Product Manager)라는 직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심이 선 후, 대표님 및 C-level과의 1:1 면담을 통해 기존 전략/기획에서 PO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지금까지 분석한 아이돌봄 플랫폼 시장의 동향과, 해외 선도 사례에서 working했던 기능들, 그리고 내부 데이터로 확인한 유저들의 특징을 바탕으로 메이커 분들께 정답(正答)을 제시할 꿈에 잔뜩 부풀어있었다.


2. 나만 설득된 kick-off

    처음으로 맡은 도메인은 "연결 이후의 모든 customer journey"이었는데, 이쯤에서 '맘시터' 서비스를 간략히 소개해보려고 한다. 해당 서비스를 잘 알고 계신 분이라면 아래 박스는 스킵하셔도 좋겠다.

맘시터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님들이 마음에 드는 베이비시터를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플랫폼 서비스입니다. 2022년 상반기 기준, 누적 100만 회원을 보유하며 "대한민국 1등 아이돌봄 연결 서비스"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부모회원은 8가지 핵심 인증과 매월 7천 건씩 쌓이는 방대한 후기 데이터를 활용해 본인의 니즈에 맞는 베이비시터를 탐색합니다. 부모회원은 1개월 단위로 판매되는 '무제한 이용권'을 구매하여 원하는 만큼 면접을 제안할 수 있고, 등록해두었던 아이돌봄 일자리에 시터회원들이 지원한 경우에도 이를 무제한으로 수락할 수 있습니다. 연결(매칭)로 이어진 부모-시터회원은 앱 내 채팅을 통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근무 조건을 조율하게 됩니다.  


    맘시터 서비스는 지금까지는 아이돌봄 '연결' 플랫폼의 역할에 집중하였지만 앞으로는 '연결'된 이후의 과정에서도 유저들에게 value를 제공하는 종합 플랫폼이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연결' 이전까지의 고객 경험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이기에, 채팅창이 열린 이후 고객들이 어떤 journey를 경험하게 되는지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기능을 출시할 별도의 목적 조직을 꾸리게 되었다. 그렇게 '문제정의파트'라는 이름의 팀이 발족되었고, 나에게 팀 리딩과 kick-off 미팅 진행이라는 미션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전략기획 출신답게 나는 고객 segment를 나눠도 보고, CX팀을 통해 접수되었던 '채팅' 관련 VoC를 수합해 분류해보기도 하고, 채팅창 process별로 유저 painpoints에 대한 가설을 나눠서 listing하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장표들과 함께 kick-off 미팅에 들어갔고, 솔직히 말하자면 팀에서 kick-out 당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무참히 박살 났었다. (이것도 드립이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답정너 수준의 장표들

    장황하게 10장에 달하는 장표들을 넘겨가며 발표를 마치고 처음 들어온 질문은 "이걸 왜 해야 돼요?"였다. 이 질문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릴 때면 저 장표들을 다 불태우고 내 입을 틀어막고 싶다. 정말 나 혼자서만 생각하고, 고민하고, 답을 내리고서는 '이렇게 합시다!'라고 외친 꼴이었다. 팀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가장 큰 문제는 위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 서비스가 유저들이 연결된 이후에 어떤 경험을 하는지 모르는데 그걸 알아내야 해서요"라니. 우리가 하려는 일이 유저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이야기가 쏙 빠져있었다는 점에서 이미 난 실패한 PO였다.


3. 우리 팀만의 Objective

    유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맘시터 서비스 이용자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까? 또, 어떤 서비스 이용 경험을 갖고 있을까?


30대 워킹맘 김예슬 씨는 월요일 오전 미팅에서 급작스러운 출장 소식을 전해 듣게 된다. 수요일부터 1박 2일간 지방을 다녀와야 하는데, 아이 아빠도 야근이 잦은 주간이라 어린이집 하원 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다. 급하게 아이를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찾기 위해 맘시터 앱을 설치하고 이용권을 구매한 다음 우리 동네에서 구직 중인 베이비시터들에게 무작정 신청을 보내고 있다.

중학생 아이를 둔 40대 김명순 씨는 아이가 학원에 가있는 동안 생활비를 벌 요량으로 파트타임형 베이비시터 일자리를 찾고 있다. 돈을 벌고 싶기는 하지만, 당장 돈이 급하거나 하진 않기 때문에 2~3일에 한 번씩 맘시터 웹사이트를 둘러보며 괜찮은 일자리가 있는지만 확인하고 있다. 부모회원이 먼저 연락이 올 때도 있지만 시간대나 장소가 맞지 않으면 거절하거나 응답을 미루는 편이다.


    이 페르소나는 유저 데이터를 뜯어보며 우리 팀이 만들어낸, 허구의 내용이다. 회원 유형별 demographic 및 stickiness(DAU/MAU) 데이터, 신청BT 클릭 시 scroll 시점 등을 조합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명확한 것은, "좋은 시터 빨리 찾는 맘시터"를 찾아온 예슬 씨에게 반드시 제공해야 할 가치 연결(매칭)이라는 점이다. 물론 연결된 유저들이 채팅창에서 어떤 대화를 주고받는지 혹은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돌봄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는지를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문제점은 '충분히 연결되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 팀의 첫 OKR은 다음과 같다. Objective는 "부모는 마음에 드는 시터와 대화할 수 있다." 그리고 Key Result는 신청(부모 → 시터) 건에 대한 연결률. 이제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우리 팀은 앞으로 <부모회원>이 면접을 제안했을 때, <시터 회원>이 수락 또는 조율 버튼을 누르는 비율을 높일 것이다. 그 이후에 이어진 수많은 Ideation과, 가설을 검증할 최소 단위의 실험을 진행해 전체 연결률을 22% 개선시킨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신청'에 대한 프로세스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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