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서야 알게 된 점이지만 우리 부모님은 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셨다. 이걸 열정이라 표현해야
할지 아님 부모님의 욕심이었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의문이다. 어릴 적 또래 아이에 비해 조금이라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면 아낌없이 지원을 해 한 우물만 팔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동생들과 비교하면 안 해본 공부, 예체능이 없을 지경이다. 이러니 둘째 동생에게 찾아온 사춘기 시절, 언니만 편애한다고 생각이 들만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특히나 엄마는 소위 말하는 '극성 엄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부모님께는 감사하지만 당시에나 지금에나 그런 원치 않는 부담과 혜택들은 누리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현실은 이렇게 말하면 엄마의 눈총이 너무나도 따갑다)
우리 딸에게 특별한 재능이 있나 봐요
초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합창단을 했었는데 음악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초등학교 4~6학년까지 성악을 준비했었다. 드라마에서도 가끔씩 나오는 장면인데, 내 자식이 조금만
특출 나면 '혹시 천재가 아닐까?' 하는 그런 장면들 말이다. 우리 부모님한테는 그 시발점이 성악이었나 보다.
성악은 특히나 피아노까지 같이 연습이 필요한 예체능 계열이라 돈이 두 배로 들어간다. 서울예술중학교
입시까지 부모님의 3년 간 일상은 온통 나에게 초점이 맞춰졌었다. 지금 생각하면 고작 11살~13살인
나이인데 꿈을 찾는다 한들 얼마나 많이 바뀔 나이인가.
당시 3년 동안 부모님의 압박에 못 이겨 서울예술중학교 입시 준비를 했었는데 아직도 엄마는 내가 원했다고만 생각한다. 참 답답할 노릇이다.
시험을 보고 온 날 나보다 더 긴장했던 엄마가 돌아오는 택시를 멈춰 세우고 길에서 헛구역질까지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생생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과는 불합격. 돌이켜 생각해 보면 떨어지기를 천만다행이었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어린 나이부터 집에 기둥을 흔들 만큼 부모님은 나에게 열성적이었다.
수학은 포기할 수 없어
나는 산수에 약하다. 어릴 때부터도 수학에 영 재능이 없었는데 슬프게도 성인이 되고서도 보니 수에 약한 편이다. 이런 나 때문에 부모님이 어지간히 속이 쓰리셨나 보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강남에서 유명한 수학 과외선생님을 설득하고 설득해 밤 11, 12시에 과외 한 자리를 간신히 엄마가 구해왔다. 그때 내 나이가 초등학교5학년이었을까...? 가리키던 선생님도 답답했던지 항상 호되게 혼나고 집에 돌아와 펑펑 우는 내가 못내 안쓰러웠는지 엄마가 머지않아 과외를 포기했다.
지금도 산수는 약하지만 밥벌이하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직장인들에게는 계산기와 엑셀이 있기 때문에-
좋은 교육은 모두 첫째에게
주말에는 체육교실, 두뇌가 좋아지게 한다는 브레인 교육, 게다가 고려대 근처에서 장사를 했던 아빠 덕분에 고대 학생들에게 과외까지, 안 받아 본 교육들이 없다. 지금이야 웃으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당시에 내 나름대로도 인생이 참 피곤했었다.
이쯤 되면 내 머리도 응답해줄 만 한데, 아무리 봐도 공부 쪽에는 재능이 없었던 거 같다.
이렇게 반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첫째의 혜택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생들에게는 쏟아지지 않았다.
이미 부모님의 모든 열정이 나에게 쏟아지고 난 터라 이후부터는 다시 할 자신이 없었다나 뭐라나.
게다가 부모님의 뜻처럼 성과가 따라와 주지 않으니 '이젠 본인이 정말 하고 싶다는 것만 시켜줄 거야'
라며 동생들과 부모님은 자연스럽게 합의가 되어버렸다.
부모님께 받은 특혜를 이제 와서 투정하는 건 아니다. 결론적으로 내가 배우고자 했던 길은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셨다. 때론 나와 동생들이 없었더라면 지금에 부모님은 더 편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은 순간들이 문뜩 떠오를 때도 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을 포기하면서 자식에게 그 많은 시간, 돈, 사랑을 쏟아부을 수 있는 걸까? 아직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부분이지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부모님께 말하고 싶다. 혹시라도 내 글을 보고부모님이 떠올랐다면 같이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