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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Jul 23. 2021

자매가 있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나의 편

나에게는 5살 터울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11살 차이 나는 막내 동생과는 또 다른 느낌인데 아무래도 자매라서 그런지 잘 통하는 구석이 많다. 내 동생한테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방황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사춘기 시절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온 가족이 그 시절을 '동생이 빙의 들렸던 순간'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때만큼은 동생이 있는 게 너무 미웠고 툭하면 내 옷과 화장품, 가방 등 호시탐탐 내 것만 노리고 있는 하이에나 같은 자식이었다.



자매가 있다는 건


둘 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싸움이 잦아들었는데 마지막으로 서로 격한 몸싸움을 했었을 때가 5년 전 내 생일이었다. 6개월 전부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던 내 디올 립스틱이 떡 하니 동생 파우치에 있는 게 아닌가?

몇 번이나 '네가 훔쳐간 거 아니야?'라고 심문했을 때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는 거 없이 '나 절대 아니거든?'이라 외치던 동생이 오버랩되면서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동생은 항상 내 물건을 훔쳐 쓰고는 진심 어린 사과도 없었었다. 이제야 이유를 물어보니 먼저 사회에 발 담그고 월급 받으며 비싼 화장품들 사는 언니의 모습에 '돈 번다고 유세지, 흥!' 이런 마음이었단다.

이런 일로 몸싸움했던 일화들은 48시간 날 세우고 이야기해도 모자라다. 자매가 있는 집이라면 누군들 없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동생이 있다는 건 내게 참 큰 위로이자 선물이다. 자매끼리 공유하고 부모님 몰래 비밀을 만들어가며 유대감을 쌓아온 시간들은 어느 누구보다 끈끈하다. 가끔은 부모님을 피해 서로의 일탈을 도와주기도 눈감아주기도 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줄 수도 있다.


때론 서로 이별의 아픔을 겪고 방에서 훌쩍이고 있을 때 신나는 노래를 틀어준다던가 욕을 해준다던가 웃기려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취하는 위로들이 친구들에게

위로받는 거보다 훨씬 좋았다. 그리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가족이기에, 온전한 나를 아는 사람이라 더 크게 위안받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가장 가까운 사이, 쌍방통행이었으면


동생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졌다. 나의 1순위가 가족이라면 동생한테는 항상 2순위쯤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때로는 이런 부분이 동생에게 서운하기도 하고 얄미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또한 이해가 된다. 같은 마음이길 강요하는 건 어쩌면 내 이기심이기 때문에 이건 내가 고쳐야 하는 부분임을 인정했다.  

모든 관계가 동일한 선상에 있을 수 없듯이 족 간에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동생도 같은 마음의 위치에 도달해 있을지도...


내가 겪은 힘듬은 피해 가기를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면서 '엄마, 아빠처럼 살지 말라고 이렇게 널 키우는 거야!' 또는 '공부를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아!' 라며 듣고 싶지 않은 잔소리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테다. 부모님이 나한테 강요할 때, 원치 않는 일을 나를 위한 일이라며 억지로 시키는 것들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이 동생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하자면 교우관계, 대학생활, 첫 직장, 사회생활 등 수많은 경험을 통해 많은 관계를 쌓아가고 그 속에서 배움이 있다. 좋은 일도 있지만 아픈 경험, 후회되는 경험, 인간관계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 등 동생들이 나처럼 겪지 말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인간은 실수와 후회를 통해 성장해 간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 동생들에게는 예외가 드는 마음이다.

 

다만 아이러닉 하게 동생이 느끼기엔 '듣기 싫은 잔소리' 정도로만 들리는 거 같아 속이 상할 때가 있다.

이런 게 부모님의 마음이었을까? 그저 내가 겪은 아픔과 후회를 너희들이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나의 마음이다.


오히려 가족이기에

 

고등학교 3학년 유학 준비에 바빠 엄마가 한참 나에게

신경이 곤두서 있을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둘째 학교

선생님이 전화가 와 동생이 학교에서 서러워 울었다는 거다. 엄마의 관심이 온통 나에게 쏟아지다 보 옆에서  동생이  무척이나 서러웠나 보다. 괜스레 미안해지면서 한편으로 이해가 안 됐던 시절도 있었다.  


가족 간에도 많은 이해심과 배려가 필요하다. 첫째는 첫째라, 둘째는 둘째라, 막내는 막내라, 서로의 위치에서 불만족스러운 것들만 보인다. '네가 첫째의 심정을 알아?'라던지, '언니가 둘째의 서러움을 알아?' 라던지 서로 입장이 바뀌어보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 이해하려 노력해도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100%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그렇지만 애초에 노력조차 없이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면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가족이기에 서로에게 더 큰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매가 있다는 건 가장 친한 친구이자 모든 걸 공유할 수 있으며 때론 크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다. 나에게는 적어도 자매란 이렇다. 나의 먼 미래를 위해 둘째를 낳아준 부모님께 감사하며 우리 집에 가장 큰 웃음이 되어주는 동생 덕분에 가족들과의 일상이 재미있고 늘 즐겁다.

 


고맙다, 지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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