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Didot)와 코스모폴리탄
어서 오세요.
오늘은 옷차림이 평소보다 근사하시네요.
이런 날엔 무거운 위스키보다는,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패션 아이템이 되는 칵테일이 어울리죠.
바텐더로서 추천하건대,
오늘 손님의 분위기에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
제격일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내어드린 '가라몬드' 기억나시나요?
펜글씨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친구였죠.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릴 서체는 정반대입니다.
서체 역사상 가장 도도하고, 날카로우며,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서체.
바로 디도(Didot)입니다.
혹시 패션 매거진 <보그(VOGUE)>나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의
표지 제목을 유심히 보신 적 있나요?
가로획은 실이 끊어질 듯 가늘고,
세로획은 기둥처럼 굵죠.
이 극적인 대비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바로
디도의 핵심입니다.
이 서체는 18세기 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잉크가 번지지 않게 찍을 수 있는 기술이 생기자,
디자이너들은 극한의 얇은 선에 도전했죠.
저는 디도를 볼 때마다 아찔한
'스틸레토 힐(Stiletto Heel)'을 떠올립니다.
고딕체가 편안한 운동화 같다면
발은 좀 아플지 몰라도,
신는 순간 자세가 꼿꼿해지고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죠.
그래서 디도는 긴 문장을 읽을 때는 쓰지 않습니다.
오직 제목, 간판, 브랜드 로고처럼
가장 빛나야 하는 순간에만 허락되는
주인공 같은 서체니까요.
자, 여기 주문하신 코스모폴리탄 나왔습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가 사랑했던 술이자,
뉴욕의 화려한 밤을 상징하는 칵테일이죠.
보세요.
투명한 마티니 글라스에 담긴 이 매혹적인 핑크빛.
하지만 색깔이 예쁘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베이스가 되는 보드카의 도수는 꽤 높고,
라임 주스의 산미는 혀를 톡 쏠 만큼 새침하거든요.
단순히 달콤하기만 한 '작업주'가 아닙니다.
알코올의 킥과 과일의 상큼함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아주 세련된 어른의 맛이죠.
저는 디도와 코스모폴리탄이
참 닮았다고 생각해요.
둘 다 '일상(Casual)'보다는
'비일상(Formal)'을 위한
존재들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디도가 편안한 가독성을 포기하고
압도적인 스타일을 택했듯,
코스모폴리탄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라
그 순간의 분위기를
완성하기 위해 마시는 술입니다.
가끔은 그런 날이 필요하잖아요.
편안함보다는 긴장감을 즐기고 싶은 날.
내가 주인공이 되어
도시의 밤을 또각또각 걸어가고 싶은 날.
오늘 밤, 당신의 드레스 코드는 '디도'입니다.
가장 날카롭고 우아한 기분으로,
건배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