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서 온 편지, 그리고 샴페인

푸투라(Futura)와 더 문워크

by 디자인 바텐더

어서 오세요.

오늘은 유난히 달이 밝네요.

지난번처럼 화려한

도시의 밤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고개를 들어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죠.

이런 날엔 아주 특별한 낭만이 담긴

한 잔이 필요합니다.


손님, 혹시 인류가 지구 밖의 저 먼 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떤 '서체'를 가져갔는지 아시나요?

바로 푸투라(Futura)입니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고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위대한 발자국을 남겼을 때,

착륙선의 다리에는

명판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Here men from the planet Earth first set foot upon the Moon
행성 지구에서 온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다

그 역사적인 선언이

바로 푸투라 서체로 새겨져 있었어요.

frontiersin.org

푸투라는 1927년 독일의

파울 레너가 만들었습니다.

이름부터가 '미래(Future)'잖아요.

컴퍼스와 자로 잰 듯 완벽한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서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장식이 모두 배제된

이 차가운 서체에서 군더더기 없는

진보된 미래를 보았을 겁니다.


그래서 NASA도 수많은 서체 중

굳이 푸투라를 선택하지 않았을까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최첨단 우주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었으니까요.


자, 그 위대한 도약을 기념하기 위해

제가 오늘 준비한 칵테일은

더 문워크(The Moonwalk)입니다.

베이스는 축배의 술,

'샴페인'입니다.


이 술은 아폴로 11호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 사보이 호텔의 전설적인 바텐더

'조 길모어'가 만들어

닐 암스트롱에게 헌정한 칵테일입니다.


레시피는 아주 낭만적입니다.

상큼한 자몽 주스,

달콤 쌉싸름한 오렌지 리큐어인 그랑 마니에르,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한 방울,

'장미수(Rose Water)'를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차갑게 칠링된 샴페인을 가득 채우죠.

saveur.com

왜 하필 장미수였을까요?

회색 먼지로 뒤덮인

척박한 달 표면을 보고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에게,

지구의 가장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향기를 선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보세요. 잔 안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이 샴페인 기포들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별들 같지 않나요?


푸투라가 군더더기를 모두 걷어낸

'이성적인 미래'의 형태라면,

이 문워크는 그 미래를 향해 도전한

인간에게 바치는 '감성적인 위로'의 맛입니다.


차갑고 단단한 기하학 서체를 읽으며,

입안에서는 꽃향기가 터지는

샴페인을 마시는 경험.

꽤 근사한 아이러니죠?


자, 받으세요.

지구에서 가장 모던한 글자,

그리고 달을 걷고 온 영웅들을 위한 축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척박한 땅을 묵묵히 걷고 온

당신을 위한 잔이기도 합니다.


우주비행사들만

무거운 중력을 견디는 건 아닐 테니까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 위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당신의 하루야말로

어쩌면 가장 위대한 '문워크'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밤은 이 샴페인의 기포처럼,

무거운 마음은 다 털어버리고

가볍게 떠올랐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고요하고 단단한 발걸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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