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립트(Script) 서체와 모히또
어서 오세요.
오늘은 넥타이가 조금 답답해 보이시네요.
지난번까지 우리는 자로 잰 듯 반듯한 푸투라나,
격식을 갖춘 디도같은 친구들과 어울렸죠.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매일 그런 친구들 틈에 있으면
숨이 막히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게 '그리드(Grid)'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을 때가 있잖아요?
출근 시간, 회의 시간,
보고서의 줄 간격, 엑셀의 네모난 칸들...
그래서 오늘은 그 모든 칸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녀석을 데려왔습니다.
디자이너들이 가장 신나게,
혹은 가장 제멋대로 쓰고 싶을 때 고르는 서체.
스크립트(Script)입니다.
보세요. 이 글자들엔 직선이 하나도 없습니다.
획과 획이 춤추듯 이어져 있고,
속도감이 느껴지죠.
인쇄 활자가 '찍어내는' 글자라면,
스크립트는 사람의 손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 지나간 흔적입니다.
어떤 건 우아하게 흐르고,
어떤 건 거칠게 튀어 오르죠.
네모난 텍스트 상자를 뚫고 나가는 저 생동감.
그게 바로 스크립트의 매력입니다.
이런 자유로운 글자에 어울리는 술은
딱 하나뿐입니다.
거친 파도와 뜨거운 태양, 그리고 뱃사람들의 술.
럼(Rum)입니다.
럼은 사탕수수를 끓여 만든
달콤하고 거친 술입니다.
과거 해군들과 해적들이
물 대신 마셨던 생존의 음료였죠.
오늘은 이 야생적인 럼에
쿠바의 바람을 섞어드릴게요.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했고,
"나의 모히또는 라 보데기타에서"라는
말을 남겨 더 유명해진 칵테일.
모히또(Mojito)입니다.
이 술을 만드는 과정은 꽤나 원시적입니다.
정량대로 따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싱싱한 라임과 설탕,
그리고 민트 잎을 잔에 넣고 짓이겨야 합니다.
너무 곱게 으깰 필요도 없습니다.
잎이 좀 찢어지고
라임 껍질이 터져 나와야 제맛이 나거든요.
거기에 럼을 콸콸 붓고,
잘게 부순 얼음을 가득 채운 뒤 탄산수를 부어줍니다.
빨대로 한 모금 쭉 들이켜 보세요.
입안 가득 터지는 민트의 청량함과
라임의 시큼함,
그리고 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럼의 달큰한 알코올.
마치 꽉 막힌 도로를 벗어나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스크립트 서체가 딱딱한 그리드를 무시하고 흘러가듯,
모히또는 정해진 레시피의 엄격함보다는
만드는 사람의 손맛과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자유로운 술입니다.
손님,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세요.
가끔은 이렇게 삐뚤빼뚤
흘려 쓴 글씨가 더 멋스러울 때가 있고,
대충 으깨 넣은 민트 잎이
완벽한 향기를 낼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오늘 밤은 네모난 칸 밖으로 탈출해 볼까요?
당신의 자유로운 일탈을 위하여.
Salud!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