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랩 세리프(Slab Serif)와 마가리타
어서 오세요.
지난번 모히또는 좀 시원하셨나요?
오늘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무언가에 강하게
집중하고 싶은 눈빛이시네요.
그렇다면 흐물거리는 것들은 다 치우고,
가장 뼈대 굵은 녀석을 만나볼 시간입니다.
혹시 슬랩 세리프(Slab Serif)를 들어보셨나요?
'슬랩(Slab)'은 두꺼운 판, 혹은 석판을 뜻합니다.
이름 그대로 글자의 끝부분(세리프)이
가느다란 삐침이 아니라,
아주 두껍고 네모난 벽돌처럼
붙어있는 서체들을 말하죠.
대표적인 서체로 록웰(Rockwell)이 있습니다.
보세요.
마치 공사장의 H빔이나
고대 신전의 기둥 같지 않나요?
19세기 산업혁명 시대,
거리에 수많은 광고 전단지가 붙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기 위해
태어난 글자입니다.
"나 여기 있어! 나를 봐!" 하고 소리치는 것 같죠.
섬세함보다는 힘(Power), 우아함보다는
단단한 물성(Material)이 느껴지는,
아주 남성적이고 직선적인 서체입니다.
이런 압도적인 존재감에 대적하려면,
술 역시 밍밍해서는 안 됩니다.
한 모금만 마셔도 혀끝을 강타하는
확실한 킥이 필요하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멕시코의 척박한 땅에서 자란
용설란(Agave)의 영혼,
데킬라를 베이스로 한
마가리타(Margarita)입니다.
마가리타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소금'입니다.
보통 칵테일 잔에는 설탕을 묻히지만,
데킬라에는 소금이 필요합니다.
데킬라 특유의 흙내음과 야생적인 향을
이 짭짤한 소금이 확 잡아주거든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라임의 강렬한 신맛과
오렌지 리큐어의 단맛이 치고 들어옵니다.
짠맛, 신맛, 단맛, 그리고 알코올의 작열감.
이 모든 맛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입안에서 강하게 충돌합니다.
마치 슬랩 세리프의 저 두꺼운 획들처럼 말이죠.
가로획과 세로획의 굵기가 거의 비슷하고,
직각으로 뚝뚝 끊어지는 저 글자들처럼,
마가리타의 맛도 뭉개지지 않고
하나하나가 각진 블록처럼 선명합니다.
손님, 가끔은 복잡한 위로보다
등짝을 한 대 시원하게 맞아
정신을 차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애매하게 돌려 말하는 문장보다는,
고딕체보다 더 굵은 저 슬랩 세리프처럼
확실하게 말해주는 태도가 필요할 때가 있죠.
이 잔을 비우고 나면,
아마 흐릿했던 머릿속이
이 글자들처럼 선명해질 겁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털어 넣으세요.
가장 강렬하고 짜릿한 당신의 열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