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시대의 유산

아르 데코(Art Deco) 서체와 사이드카

by 디자인 바텐더

어서 오세요.

오늘은 밖에서 찬 바람을 꽤 오래 맞으신 모양이네요.

몸을 녹일 수 있는,

아주 깊고 따뜻한 향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글자의 뼈대나 굵기,

그리고 기능적인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죠.

가독성을 위한 가라몬드,

시선을 끄는 록웰처럼요.


하지만 오늘 보여드릴 서체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바로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입니다.

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의

파리와 뉴욕을 상상해 볼까요?


사람들은 전쟁의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미친 듯이 파티를 열었고,

예술과 사치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이 시기를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부르죠.


이때 등장한 예술 양식이 바로

아르 데코(Art Deco)입니다.

이 시기의 서체들을 보면,

글자라기보다는

하나의 건축물이나 보석 세공품 같습니다.

가느다란 선과 극단적으로 두꺼운 선이 교차하고,

불필요한 장식들이 가득하죠.


책의 본문으로는 절대 쓸 수 없는,

오직 샴페인 라벨이나

재즈 클럽의 화려한 간판을 위해

존재하는 글자들입니다.


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글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기주는

곡물이 아니라, 귀족들의 술인

'와인'을 증류해서 만든 황금빛 액체.

바로 브랜디(Brandy), 혹은 꼬냑(Cognac)입니다.


브랜디는 포도의 영혼을 응축시킨 술입니다.

오랜 시간 오크통에서 숙성되어

바닐라, 캐러멜, 말린 과일의 복합적인 향을 뿜어내죠.


오늘은 이 브랜디를 베이스로,

1920년대 파리에서 탄생한 전설적인 칵테일

사이드카(Sidecar)를 만들어 드릴게요.

wineenthusiast.com

이름의 유래는 재밌게도

오토바이 옆에 달린 보조 좌석입니다.

1차 대전 당시 파리에 주둔하던 미군 장교가

오토바이 사이드카를 타고 바에 도착해,

브랜디를 베이스로

식전주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죠.


사이드카는 잔의 테두리에 설탕을 묻히는

'슈가 림(Sugar Rim)'이 특징입니다.

첫 입에 닿는 설탕의 달콤함 뒤로,

레몬의 새콤함이 미각을 깨우고,

마지막으로 브랜디의 묵직하고

복합적인 포도 향이 식도를 타고 뜨겁게 넘어갑니다.


가장 사치스러운 재료에 시트러스의 산미를 더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맛을

우아하게 밸런스를 맞춘 완벽한 한 잔이죠.


손님,

아르 데코 서체를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너무 장식적이고 실용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기능이나 가성비 따위는

완벽하게 무시한,

그저 '아름답기 위한 아름다움'이

우리를 위로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효율성이라는 단어에 짓눌려 지치셨다면,

이 한 잔의 사이드카와 아르 데코의 화려함으로

스스로에게 조금 사치스러운 위로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쓸모없지만 가장 찬란했던

1920년대의 낭만을 담아,


당신의 우아한 밤을 위하여.

Santé!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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