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Keating'?

이상향 찾기 에세이

by 피터팬신드롬

"O Captain! My Captain!"


출처 : https://blog.naver.com/or_ng_/223915921907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외에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게 당시에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중3시절.

팬티바람으로 괴물과의 마지막 격투씬이 숨 막혔던 시고니위버의 에이리언, 머리에 총맞고도 한 참 서 계셨던 윤발이 형님의 영웅본색, 마이클 J. 폭스의 등짝 일렉 기타 애드립이 빛났던 백투 더 퓨처 등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에 한참 열광하고 있던 나에게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에게 처음으로 ‘술’을 처음 가르쳐주고, ‘이성’에 눈을 뜨게 하고, ‘시’에 대해 알게 해 준 교회 형이 있었다. 어느 날 그 형이 소주에 감자탕을 게걸스럽게 먹어가며 얘기해 준 연애담에서 영화의 제목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연애담인즉슨, 영화 속에서 녹스 오버스트릿이 선망하던 크리스라는 여학생이 있었는데, 구애 끝에 친구인 닐의 연극을 보러 같이 극장에 갔단다. 나란히 연극을 보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오버스트릿이 크리스의 손을 잡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씬(Scene)에 맞춰서 실제 영화관에서 자기 여자친구의 손을 잡았다는, 나름 신박하고 유용한(?) 얘기였던 것. 한참 짝사랑 중이었던 순진한 나는 그날로 그 씬이 궁금해서 원작인 소설책을 사서 하루 만에 읽어버렸고, 책으로 먼저 접한 영화이었던 셈인데, 동네 비디오로 나왔을 때 보고 나서 나의 최애 영화가 되었던 것.

녹스오버스트릿과 크리스 극장 장면

그때 이후, 매학년,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바뀔 때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까지 나의 선생님, 교수님, 선배님, 사장님에게 매번 이 '질문'을 늘 던지고 있었다.


"Are you Keating?", 당신은 나의 키팅 선생님이십니까?


"Are you kidding?"

하지만 진정한 멘토를 찾는다는 것이 쓸데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만큼 불가능한 바람이었을까?


왜냐하면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키팅' 선생님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상적인 인간일 뿐이었다.


80, 90년대 말죽거리적(?)인 잔혹한 나의 학창 시절, 말보다는 질긴 박달나무 매질로, 격려보다는 신경질적인 윽박지름으로, 사려 깊은 가르침보다는 시험 점수에 입각한 상벌로만 제자를 대했던 선생들은 그토록 잔인했다.

좀 더 다정하고, 착하고, 순수했던 선생님들도 있었다. 하지만 키팅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우악스러운 호르몬 덩어리 사춘기 반항아들의 ‘밥’으로 오히려 고통받으셨다. 이유 없이 반항하는 아이들의 언어폭력에 눈물 흘리셨으나 합당한 계도는 없었고, 그분들의 선한 가르침이 우리들의 마음에 미치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그저 학기가 지나면 이별하면 그만인 강의자로 남으셨다.

나보다 학식이 높고 통찰력이 있다고 진정한 ‘멘토’가 될 수는 없었다. 진정한 멘토는 멘티에게 항상 선한 숙제를 남기고, 발전할 길을 열어주며, 진정한 삶을 갈구할 용기를 줘 나아갈 원동력이 되게 해 주며, 무엇보다도 몸을 사리지 않고 몸소 모범이 되어야 한다. 불의에 항거해야 하고, 내 소신이 정의의 편에 서있기 위해 유혹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직해야 했다.

살다 보니 내 앞에 멘토인 척하는 이는 있었어도, 현실에서는 결국 교장과 총장과 사장, 그리고 생계에 굴복하는 나름(?)의 이기적인 인간들이었다.


소나무처럼 변함없는 자리에서 진정 자기의 삶을 올곧게 살고 있어 내가 바라게 되고, 닮고 싶게 하는 멘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평생 내게 키팅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저 농담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한번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Are you Keating?"


이제 그 질문을 내게 던져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나는 키팅의 가르침을 수용할 수 있는 제자의 그릇인가?

나는 제도의 관성을 딛고 일어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게 책상 위로 올라설 용기가 있는가?

나는 말과 언어로 세상을 바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키팅이 되어줄 수 있는가?


출처 : 병원신문


“I went to the woods because I wished to live deliberately. I wanted to live deep and suck out all the marrow of life. To put to rout all that was not life, And not, when I came to die, discover that I had not lived….”
“나는 숲으로 갔네 나 스스로 살고 싶어서 삶의 골수*를 빨아들이고 삶 깊숙이 살기 위해, 삶이 아닌 그 모든 것을 물리치기 위해 내 끝을 맞이했을 때, 내 삶이 아님을 깨닫지 않길….” ( *골수라고도 하고 정수라고도한다. )


소로우처럼 숲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으나, 삶 깊숙이 삶의 골수를 빨아, 삶이 아닌 모든 헛된 것들을 버리고 마음으로 진정 원하는 것을 추구할 용기를 갖고 세상을 살아버릴 키팅이 될 수 있느냔 말이다.


삶은 영화처럼 될 수는 없다 해도, 그 바람이 영화가 되는 것처럼...

나는 소망한다.

키팅이 되게 해달라고.


죽은시인의사회 O.S.T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