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간 "싸이"

30대 중반 암흑기에 관하여

by 피터팬신드롬

2010년 전후로 그 어느 매이던가.

나름 회사 일로 전쟁 같은 한 주가 끝나고 주말이 되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서는 슬리퍼 끌고 PC방으로 직행.


"자리주삼! 자리주삼!"


담배 찌든 내 방만큼 편한 PC방 의자에 털썩 앉았다. 빈 재떨이에 담뱃갑 비닐을 뜯어 던지고는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켠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낙성대 PC방.


1년 남짓 사귄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나서부터는, 주말은 거의 PC방 칩거 상태였다. 내 유일한 오락거리는 거기서 또 다른 세계를 탐닉하는 것이었다. WOW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한지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주말마다 그 소중한 시간을 10시간이고 12시간이고 게임으로 소비하고 있었던 우울한 30대 중반.


“형님! 파밍은 다 끝나셨죠? 불의 원소는 몇 개나 모으셨어요?”

“어 이제 좀 해보려고…. 걱정 마 오늘도 닥힐(닥치고 힐링) 하면 되는 거 아냐? 너 안 죽일 테니 걱정 말고….”


16명 구성의 족소공대. 족발에 소주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공대 소속. 1파 성기사. “Shiila”가 내 게임 케릭터였다.

금주 공략 예정인 보스 몹(게임 속 몬스터) 잡는 데 성공한다면 “설퍼라스 – 라그나로스의 손”을 만들 수 있는 “화염 주괴” 재료를 다 모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shilla 가 서버의 지존 성기사가 될 수 있다. 그 양손 망치를 득템 하게 되면 닥치고 힐만 줄 수 있는 캐릭터였던 shiilla는 웬만한 몹을 혼자서도 잡을 수 있게 되는 유일한 성기사가 되는 것이다!!

자료출처 : https://www.inven.co.kr/board/wow/5540/2737

족소공대가 이 서버에서 새로운 업데이트 때마다 던전 공략이 다른 공대보다 빠른 이유는…. 대부분의 공대원들이 이 피시방에 모인다는 점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한 장소에 모여 게임을 한다는 건, 그만큼 공략을 하는 데에 헤드셋 없이 직접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데에 유리했다. 이 공대를 이끌어가는 공대장인 전사 ‘어그로는내꺼’ 님은 목소리가 아주 멋진 백수 동생이었고, 공대가 전장에 나갈 시간이 되면 그의 근엄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PC방을 가득 채웠다.


지존 성기사 Shilla의 주인장이었던 나는 실제 나이로는 넘버 3이었다. 나보다 5살이 많은 노총각 형님도 계시고,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공처가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그 형은 수산업에 종사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옆자리에 앉으면 살짝 비릿한 냄새가 났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마나가 항상 모자란 내 성기사 옆에서 항상 빵과 물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마법사였으니까.


나만큼 한심한 인생들이었다. 아니 나보다 더 한심한 인생들 사이에서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자친구보다 게임이 좋다는 무리였다. 그 주에 공략 중이던 던전의 보스몹 잡는 데에 성공이라도 하게 되면 근처 족발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게임 얘기만 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도낏자루 썩듯이 폐와 머리는 썩어들어갔다.


게임이 끝나면 아주 잠시 싸이월드에 접속해 본다. 최근 미니홈피 스킨을 바꿨고, 미니홈피 제목은 “자아! 이제부터 시작!”

그놈의 시작은 1년 내내 하고 있었다. 도토리로 음악을 100여 곡 샀기 때문에 음악은 미니홈피 BGM으로 들으면 됐다. 그리고 허무에 가득한 푸념 같은 시들을 써놓았었고, 대부분 사랑 타령이었다. 방문자 수는 항상 ‘0’ 명. 그러니 미니홈피는 그냥 뮤직 플레이어인 셈.

한 번은 카메라에 꽂혀서 월급을 모아 거금을 들여 카메라를 샀다. 새롭게 출사 동호회라도 나갈까 했지만, 사실 카메라를 사면 담고 싶은 풍경을 찾아 줄창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맨날 동네 가로등만 찍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우울했던 30대였다.


주말에는 게임중독, 연애 감각은 점점 잃어가고 있었고, 싸이월드에는 비 맞은 가로등, 눈 맞은 가로등, 낮 동안의 가로등, 고장 난 가로등만 찍혀 있었고, 방문자 제로의 특별할 것 없는 그 미니홈피가 흡사 내 인생 같았다.


세월이 흘러간 “싸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나의 암흑의 시절.

한 번은 회상해 보는 그 시절은 모두 쓸모없는 시간이었을까?

하지만….


2012년 2월.


그 사건 이후 그런 쓸모없는 시간으로 점철된 내 인생은 변하기 시작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