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볼 이야기

서울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최상무 이야기 - 2

by 피터팬신드롬


확 트인 푸르른 페어웨이를 향해 하얀 골프공이 경쾌한 드라이버의 타격음과 함께 쌩하니 발사됐다.


‘잘 맞았는데….’


T샷 소리를 듣자 하니 이 홀은 버디 예감인걸? 중앙 페어웨이에 우아하게 떨어질 공이려니 그 짜릿한 순간을 눈에 담고 싶지만….


절대 고개를 들어 그 순간을 눈에 담아서는 안 된다.

고개를 드는 순간! 피니쉬 동작은 스윙 연습으로 기억한 이상적인 몸의 회전을 잊어버리고 궤도를 이탈하게 되기 마련. 이는 흡사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하는 중 롯의 아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채 끝내 궁금한 걸 못 참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오비 라인을 넘어가는 공을 소금기둥처럼 망연자실 서서 바라보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듯 욕망에 길들여지기 쉬운 몸뚱이를 피나는 연습으로 정제하는 일이, 한주먹도 안 되는 조그마한 공을 목표 홀 컵에 집어넣는 일이, 18홀 6~7km의 여정 동안 4명이 기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조절해 가며 강도 높은 멘탈 싸움을 하는 일이, 그리고 그 라운딩을 공유하는 사람 간의 내밀한 친밀감이 어떠한 유대감을 불러오는지 알게 되면 대략 골프의 매력에 대해서는 입문하게 되는 셈이다.


처음에는 그랬다. 날아오는 공이야 치기 어렵더라도, 바닥에 착 달라붙어 있는 공이야 치는 게 뭐가 그리 어렵겠냐 싶었다. 이게 비싼 돈 주고 레슨받으며 배울 일인가? 장비값도 수십만 원 들고, 필드에 나갈 때마다 그린피, 캐디피, 카트 사용료, 게다가 상상을 뛰어넘는 그늘집 음식값 등등 인당 100만 원은 족히 드는 운동을 나는 과연 언제나 해 볼 수 있는 것일까? 내가 해도 되는 운동인가?


직장경력 약 10년이 안 된 때에 그 기회는 찾아왔다. 과장에서 차장이 되던 해에, 골프는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꼭 배우라던 직속상관이 이제는 아예 레슨비 지원을 해주겠다고 했다. 알고 보면 같이 놀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었지만, ‘예스맨’이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다려왔던 것 아니었냐고? 돈이 별로 없었다. 당장 장비도 필요했고, 드레스코드를 맞추려면 옷도 사야 하고 생각보다 돈 들어갈 일이 많았다. 드라이버며, 아이언 세트는 거래처 부장님이 주셨고, 골프백은 사장님이 주셨고, 어떻게든 필요한 골프용품 구색은 갖추고 내 골프 인생은 시작이 되었다.


지루한 똑딱이 ( 공을 맞히는 연습 ) 레슨이 끝나고 차차 롱아이언 연습부터 드라이버까지 칠 수 있게 되었을 때, 머리를 올리는 날( 실제 필드에서 골프를 치게 되는 첫날 )이 정해졌다. 첫 필드를 나가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흥분해 있었다. 점검에 점검을 했다. 모든 장비와 용품은 중고였으나 닦고 닦았다. 그 호들갑이 티가 많이 났었던가, 칠순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 한창 들떠 있는 나를 부르셨다.


“너, 벌써 골프 치냐?”

“네, 영업하려면 쳐야 할 것 같아서요. 회사에서 지원 많이 해줘요.”

“그래? 그럼 이리 와봐.”

“네?”


대기업 상무 이사님으로 퇴직하신 아버지 필생의 자랑, 당시 우리 가족이 살던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는 훨씬 더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1층의 아버지 세상과 2층의 아들들의 세상, 이 1, 2층을 이어주는 계단 뒤편으로 큰 창고가 있을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잔뜩 허리를 구부려 창고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두 개의 짐을 가지고 나오셨다. 골프백과 보스턴 백이었다! 아버지가 골프를 치셨단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뜻 밖에 등장한 아버지 골프 장비의 등장은 뭐랄까 형언할 수 없었지만, 코끝이 시큰한 최초의 어떤 느낌이었다.


“이게 말이야. 이래 봬도 일제 혼마체야 당시에는 괜찮은 거였는데, 이제는 썩었구먼.”


외형은 크게 다르지만, 드라이버 같았다. 헤드가 나무 소재였고 요즈음 것과 비교했을 때 무척 작았다. 헤드와 샤프트 사이는 갈색으로 녹물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혼마로고는 선명했다. 다른 것도 그랬다. 골프백도 가죽 같은 단단한 소재가 아니라 그냥 비닐 재질이었고, 이것도 풍파를 맞아서 그런지 거대한 비닐봉지 같아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이건 쓸만할 거다.”

그리고는 골프백과 같은 체크무늬 보스턴 백을 코앞으로 들이미시더니 백을 갈라 열어 주셨는데….


“어? 이게 다 모예요?”


눈이 휘둥그레, 흡사 여행용 가방에서 돈뭉치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놀라고 말았다. 골프공이었다.

기념용 골프공부터, 88 올림픽 호돌이가 그려져 있는 골프공까지 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로고의 포장지에 얼추 세어봐도 200개가 넘었다.


“이제 시작했으니 공 많이 잃어버릴걸? 써라.”

“고맙습니다. 아버지”


호돌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30년은 넘었을 골프공이라니. 드라이버가 녹슬 정도로 습기 조절도 안 되는 창고에 보관된 골프공이라면 코어가 부식해서 탄성이 거의 없는 상태라 비거리도 30%~40%는 떨어질 공들이었다. 하지만 이게 어디냐. 한동안은 로스트볼 걱정 없이 따로 살 필요가 없었으니….


2026년. 골프 안 친지가 어언 2~3년은 된 것 같다. 다행히(?) 글도 쓰랴, 책도 읽으랴 다른 취미들이 골프를 사랑하는 마음을 대체했으나, 꼭 취미로만이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치는 골프는 이제 끝난 듯싶다.


아버지께서 맞닥뜨린 골프 장비 봉인의 시기보다 내가 오히려 빠른 것 같다. 그렇게 묘하게 다시 입 밖으로 되뇌는 골프 장비 봉인의 시기에 마음으로 오버랩되는 것이 있다.


호돌이가 그려진 로스트볼을 마지막으로 친 어느 푸르른 필드의 눈 부신 햇살과, 30년 된 골프공을 주실 생각을 하신 아버지의 그 얼굴과 동시대에 부자간 한 번도 필드 라운딩을 함께 해보지 못한 아쉬움이 묘한 색깔의 감정으로 남겨져 있다.


그리하여, 나의 숙제는.


절대로 골프용품을 버리지 말 것이며,

특히 골프공은 꼭 습기가 없는 곳에 잘 보관해 둘 것이며,

혹시 모르는 아들과의 라운딩을 위해 몸을 살펴, 하체 힘을 키워둬야겠다는 것.


그늘집에서 그렇게 3대가 모여 막걸리나 한 사발 하는 꿈이면 더 좋고....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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