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

회식 후 집 앞에서 벌어지는 발칙한 일탈

by 피터팬신드롬

회사에서 회식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성공기원을 한다던지, 신입이나 경력자가 새롭게 합류한다던 지, 성공적인 실적 달성 후 포상의 의미라던지 주로 미래를 위한 단합의 자리가 필요할 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안다. 하지만 민심(?)이 흉흉한 당시 송별회 회식이 있던 어느 날이었다.


송별회 회식. 인생사 회자정리(會者定離)라 만나면 헤어지는 게 당연한 이치이고, 회사와 당사자간의 거래계약이 종료된 아주 건조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후일을 도모하면 참 좋겠으나, 우주정거장에서 우주선 하나가 도킹되었었다가 이제는 방출되어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일엽편주가 되는 상황에 과연 의연할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이걸 굳이 기념할 만한 자리가 필요할까? 그저 떠나는 사람의 자리를 빌어 술이 마시고 싶은 것일까?


송별회 회식에는 오히려 진심인 것 같다. 떠나는 자의 홀가분함, 남겨진 자들의 섭섭함, 혹은 인계받은 후임의 원망스러운 마음이 어우러져 있지만, 적어도 술을 억지로 마시는 기분은 아니다. 술에 동하는 마음이란 힘을 내야 한다는 가식적인 목적보다는 이별을 앞둔 섭섭한 마음, ‘감정’에 더 움직이기 때문이랄까….


행복할 때 글 쓰기보다는 우울할 때 글이 잘 써지는 것처럼 , 술맛 또한 우울하면 더 달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장례식장’에서 호상이라면 엿볼 수 있는 다소 ‘패러독스’함과 비견되는…. 아주 신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침울하지는 않은 왁자지껄함이 그 분위기를 설명할 수 있다. 술잔 돌리는 우리나라의 술자리문화가 만들어낸 웃픈 광경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자리는 대개 ‘떠나는 자’에 대한 성공을 ‘성공적(?)’으로 기원해주고 난 다음, 당사자의 실신으로 마무리가 되기 마련이다. 이번에도 어김이 없었다.


송별회는 끝났으나, 내 마음은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붙들어 매어둔 정신으로 마음속 내비게이션만 겨우 켜둔 체 버스에 올라탔다. 돌아오는 광역버스 안에서 고개 꺾어 힘을 비축하는 내 내, 목에 걸어둔 묵직한 핸드폰에서 카톡 알림이 울린다.

‘야!’

‘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 카톡은 어떤 상황에서도 알아듣고 답장하기 위해 알림음 설정을 별도로 해두었었다. 그 알림음은 귀여운 소녀의 목소리지만 예리하고 날카롭고, 동공지진을 불러오는 외마디 비명 같은, ‘야!’.

하지만 내 동공은 마비상태. 카톡 그 작은 폰트를 볼 수 있게 초점을 맞춰줄 리 없는 상태.


‘어디야? 빨리 온다며? 무슨 회식이 요즘 이렇게 길어?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전체 회식이야? 어쩌고저쩌고….’

이라는 내용일 거라고는 추측했다. 카톡 답신을 했다.


‘도저히 이대로는 못 가겠어….’


솔직한 나의 마음을 오타투성이 답신으로 전했다. 나 사실 집에 가지 않고 거기로 가고 있다고. 내 마음 왜 이런지 모르겠지만 집에는 이대로 못 가겠다고. 이내 아내의 ‘야!’ 답신이 끊겼다.


사실 상습적인 나의 외도를 이미 아내도 요즈음 눈치채고 있었다. 몸에서 나지 않던 냄새가 난다고, 심드렁하게 내뱉는 말에 종종 나를 얼어붙게 했었으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전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어지러운 마음이 들었을 때에도, 인생사 허무할 때도 나는 종종 외도를 일삼고, 위로를 받았었으니까. 1-2시간이 지났으려나 다시 아내의 카톡음이 울렸다.


‘그년이야, 나야? 선택해,’


올 것이 왔구나 했다. 아! 이미 나는 선택이 끝났는데…. 이미 난 저지르고 있는 중이었다. 스마트폰을 엎어두었다. 온통 야! 야! 소리가 들렸었는데, 이 소리가 마음속에서 나는 건지 현실 속에서 나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새빨간 유혹을 끝내 뿌리칠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야 만 것이다.




머리가 지끈지끈. 속은 쓰리고 더부룩. 숨길 수 없는 냄새가 온몸에 배어있다.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게 정수기 찬물을 받았다. 벌컥벌컥. 소파에서 잠을 잤구나. 불안한 아침. 찬장 거울을 보니 아직도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홍초 빛이다.


삐끄덕!


안방 문 열리는 소리. 아내의 검은 그림자에 바닥에 반사된 아침 햇살이 사정없이 갈라진다. 내 목뒤까지 기척 없이 쓱 와있다. 흠칫 놀라 입으로 가져간 머그잔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주둥이부터 얼굴을 가린 채 얼어붙어 있었다. 흡사 아프리카 산악지대 절벽을 뛰어다니는 ‘클립스프링어’가 흑표범 앞에서 시냇물 마시다 죽은 척하는 것과 같았다.


“아예 거기서 살지, 왜 기어들어왔어? ”

“미안해….”


“아니, 무슨 감자탕을 혼자 그렇게 많이 먹어?”


그리고는 영수증을 보였다. 어제 내 호주머니 속에 있었나 보다.


‘춘희네 감자탕 35,000원’


할머니뼈다귀해장국이었다면 아마 아내가 비교하진 않았겠지.

춘희네 감자탕이어서 항상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묻는다.


‘그년이야, 나야?’


그날도 어김없이 브런치로 바삭한 토스트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외도에 응수한 아내의 처절한 남편 사랑이다.


상업적인 의도가 없음을 밝힌다.


빨간 유혹.. 뼈다귀해장국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