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차 직장인이 가진 축적의 공간
책은 완벽하다.
완벽한 사각형.
쌓이기 좋고, 펼치기도 좋으며, 세워도 좋은 완전한 외모이기에...
책은 외롭지 않다.
사각형이기에 몸 맞대어 쌓일 수 있다. 동그라미와 세모가 만나 생기는 빈 공간은 없다. 서로가 채워주고 서로가 지지해 주므로 그 자체가 질서가 되어, 마음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책은 강하다.
처음 생각의 홑장으로 시작해 결론에 도달한 마지막 장까지 한 세계 안에 완벽하게 통합되어 있다. 지혜의 무게만큼 무거워 책 앞에 서서 먼저 팔짱을 끼고 입술을 만지며 질서를 깨고 나올법한 지혜를 가늠하게 되니, 검지로 책등머리를 잡아 뽑을 때의 묵직함이 강할수록 위대한 구루의 지혜가 기대된다.
책은 다정하다.
여백이 있어 색깔이 잘 스며들고, 남은 공간에 생각이 서리기 좋아 사랑을 담아도 좋고, 우정을 담아도 좋고, 희뿌연 추억을 담아도 좋고, 그 모든 내 흔적을 남기기에도 좋다. 감응을 위한 빈틈이 다가가 말을 걸기에 부담이 없게 하고, 질문을 받아도 음미하게 되니 애써 뒤쫓지 않아도 되어 급하지 않다.
책은 현명하다.
손이 가고, 그 속이 궁금하며, 미련 없이 닫아버리기에도 좋아 전생이 있어 현자가 환생한다면 책으로 현생 할까?
찾아가 보고 싶고, 물어보고 싶고, 지혜로 맞서지 못해도 빙긋 웃으며 답해줄 것만 같다.
이런 생각 끝에 책이 수없이 꽂혀 있는 책장을 보면 경이로운 벗을 둔 것처럼 가슴이 뿌듯하고, 마음이 정겹고, 진지해지며, 가슴 설레는 스승 앞에 방금 도달한 땀 흘리는 제자가 된다.
책장을 보면,
미지에 대한 질문이 내가 사는 곳에서부터 비롯됨 알게 되며,
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자 하는 마음의 애틋함을 느끼게 되니
연륜에 상관없이 이리도 천진해질 수 있음이 신기하고 좋다.
어찌 클라우드 따위와 비견할 수 있을까?
비번을 까먹고 당혹스럽게 앉아 책장을 보며 드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