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도시 '강남'을 넘어

총천연색 세상으로 가는 막차를 타다

by 피터팬신드롬

싱그러운 봄에도 내 마음의 봉우리에 녹지 않고 남아있는 만년설.

인생에 있어서 찬란한 계절이 왔음에도 그렇게 차지도 않고 따뜻하지도 않은 축축한 얼음덩어리. 내 인생은 그와 같이 ‘어중간한 삶’이었다. 그만큼 내 인생전반에 걸쳐 쫓아다니는 이 단어는 입 밖으로 꺼내면 스스로 자박하여 마음은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지천명을 넘어서고도 이 말이 주는 불편함에는 쓴웃음을 짓다가도 이 또한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또 한 번 어중간한 게…. 이건 거의 저주가 맞다.


'어중간하다'는 말은 ‘거의 중간쯤 되는 곳에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두루뭉술하다. 시간이나 시기가 이러기에도 덜 맞고 저러기에도 덜 맞다.’ 라는 뜻이다. 극도의 성공도, 반대로 극도의 실패도 아닌 삶을 살았다. 그렇게 어중간하게 살아서, 고통은 미비하였고, 슬픔은 견딜만했으며, 행복은 간지러웠다.


볼 빨간 열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봤었던가? 정신 차리고 보면 ‘보통의’ 내가 서 있는 여기 현실은 컬러 필름을 흑백으로 인화해 갈색의 이미지에 갇혀있는 모노크롬 같은 삶. OTT 안의 스토리는 총천연색 두근거리는 세상인데, 이어 버드를 빼고 정신을 차리면 2층 버스가 도착한 강남, 갈색의 도시. 아직 깨어나지 못한 또 다른 꿈속 도시이다.


어중간한 갈색의 이미지 안의 실속과 내실이 비겁해 보이기 시작한 40대 중반. 월급쟁이로서의 표상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순종적인 아들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는 마음속으로 형상화하기에도 부끄럽지만 조그마한 불씨를 꺼내어 조심스레 입김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았던 불씨는 이른바 내가 ‘미시적 동기’라고 부르는 것인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흥미·관심사로, 특정 행동을 반복하게 만드는 ‘동기’로서 그것은 ‘사각거리는 펜을 들어 무엇인가를 종이에 쓰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글쓰기’가 모노크롬 갈색의 삶을 무지개색보다 곱절의 수의 색깔로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쓸 때마다 팔고 팔리는 단순한 삶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토요일 일요일을 갖게 되었다. 휴일에는 절대 ‘일’을 생각하지 않는 철칙을 세웠다.


하지만 아직 나는 필요악의 강남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월요일마다 이층 버스를 타 다시 사무실로 되돌아가야 하고, 금요일까지 가장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중간한 삶은 생존을 위한 협상. 그 협상을 존중하기에 다시 그 ‘선’ 안으로 기꺼이 들어갈 수 있다.


2월 28일.

윤년에는 마지막 날이 될 수 없는 신비한 28일의 날. 오늘!

어중간하게 지키던 중앙선에서 행여 금을 넘으면 어쩌나 위태하게 걸으며 살다가 이제는 용기를 내었다. 경영학, 사회학의 건조한 전공을 벽돌 삼아 문예창작과로 사이버대학에 3학년 편입으로 지원을 하였고 오늘은 그 입학식이 있는 날.


동탄 2층버스는 이제 강남을 지나 미아로 향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노크롬의 흑백 여닫이 TV에서 이코노칼라텔레비전의 총천연색 삶으로 가는 2월 마지막 막차. 아침에 떠나는 이 막차를 놓치면 봄날의 시작인 3월 1일에는 만년설에 뒤덮인 내 산 봉우리에는 꽃이 필리 없다.


오늘은 넥타이를 풀고, 라운드 티에 카고바지에 하얀 운동화를 신을 거다. 수첩과 만년필, 그리고 책 한 권이 들어간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내 미시적 동기가 이끄는 벚꽃 만개한 꿈의 광장으로 나갈 참이다.


총천연색 스토리를 내 손으로 만들어 볼 거다.


다녀오겠습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