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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ul 17. 2015

Anything is Nothing

공감이 사라진 사회

'현대사회는 시선이 무한 교차되는 Attention Network  Society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과거는 한낫 과거로 지나가버리지 않고 언제든 지금 현재로 부활하여 나를 괴롭힐 수도 있고, 나는 과거 속에 갇힌 박제가 되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부여잡고 어찌할 도리를 모른 채 속수무책 당해야만 한다. 최근 장동민 사건(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삼풍백화점 구조인 비하 발언으로 라디오 하차)을 보시라. 물론 과거의 잘못이 과거가 되었다 하여 마땅히 용서될 일은 아닐 것이나, 술에 취한 어느 날 뒷골목을 헤매다 그저 별 생각 없이 냅다 질러버린 노상방뇨가 몇 년이나 지난 어느 날 누군가에 의해 뒤져져 생생한 CCTV 필름으로 살아나 갑자기 광장 스크린에서 돌아가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직장에서 일하다가 신경이 날카로워진 언니와 우연히 부딪히게 되어 버르장머리 없게 몇 마디 쏘아붙인 말이 며칠 만에 사람들 사이에 돌고 돌아 갑자기 '미친 년'이 되어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면, 그게 과연 일할 만한 직장일까. 이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일까.

한 편으론 몇 백명의 아이들이 주변의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 앞에서 생생하게 죽어갔고, 그들이 왜 그런 희생을 당해야 하는지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리고 남아있는 영상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과거는 과거로 묻어두자는 말이, 채 납득이 되기도 전에 아주 쉽게 과거로 박제가 되어버린 상황은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똑같이 박제가 된 과거지만 아무도 꺼내보지 않는다면 그건 없는 것과도 같다.

현대사회는 시선이 무한 교차되는 Attention Network Society다. 시선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가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에 올려져 마음껏 구경될 수 있다. 그곳엔 인격도 없고 인권도 없고 그래서 인간도 없다. 그저 구경 '꺼리'만 있다. 

이토록 많은 시선이 교환되고 관심이 과잉됨에도 불구하고, 몇 백명의 아이들의 죽음이 시선과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이유는 바로 그 시선과 관심이 발현되는 동기 때문이다. 그것은 멀찍히 거리를 둔 채 구경할 만한 재미가 있는 '꺼리'에 한한다. 그러니까 아주 쉬운 말로 '강 건너 불 구경'.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 건너에 있어야 하며(그래야 나에게 피해가 없다), 불이 활활 타올라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건물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더 큰 구경 꺼리가 될 것이다.

안타까운 건, 그렇게 오로지 시선 자체(attention)만이 중요한 사회가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감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Empathy Free Society다. 누가 어떻게 되든 그것이 나에게 피해만 없다면 무엇이라도 상관없고(Anything)이고, 나에게 재미를 준다면 목을 쭉 내밀고 들여다보고 싶은 무언가(Something)지만, nothing도 something도 결코 의미 있는 무엇, 그 자체로서의 무엇(Thing)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Attention Network Society에서는 어떤 사건이든 인간이든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


Anything is Nothing.


실로 무서운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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