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라는 단어로 정당화된 개인 이기주의
나도 스마트폰을 즐겨 애용하고 재밌어라 하지만 적어도 그게 누구든 사람이 눈 앞에 있을 때는 들여다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둘셋이 마주 보고 앉아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상대와 어떤 관계인가와 상관없이, 상대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와 상관없이 상대를 소외시키는 행위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본다면, 딱히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져야겠다는 마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소외감이라는 기분 나쁜 감정을 겪어야 하니 참 고약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진정한 소통이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린 커뮤니케이션을 언어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언어 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훨씬 더 많고 깊은 의미의 공유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언어를 통한 의미 공유는 단순히 '논리'에 의지하지만 언어 외적인 의미 공유는 '감정'을 동반하며, 대개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는 논리에 있지 않고 논리 밑에 숨겨져 있는 감정에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화, 메신저 등은 언어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매체적 한계 때문에 진정한 소통이라기보다는 그저 텍스트의 교환에 가깝다. 하지만 면대면 상황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은 진정한 의미 공유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계적 매체를 선택, 기호적 언어에 굳이 의지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상대와 소통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결과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소통의 왜곡, 한계를 넘어 단절과 소외를 낳는다.
게다가 소통의 양적, 질적 측면에서 모두 이 조그만 기계에 의존하는 경향이 더 짙어짐에 따라 개인간 소통의 단절, 개인에 의한 개인의 소외는 점점 더 빈번하고 깊어지고 있다. 나아가 사회적 관점에서 보자면, 스마트폰은 현대사회에서 소외의 일상화, 보편화, 정당화를 낳음으로써 '관계가 단절된 사회'라는 양립하기 힘든 특성을 동시에 갖는(관계단절-사회) 이상한 사회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애초에 사회란 것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대규모로 맺어질 때 만들어지는 집단이라고 보았을 때, 실로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 개인만이 존재하는 사회라니.
요즘 업무를 하다 보면, 일을 좀 더 '스마트하게 하자'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예전 같았으면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자, 논리적으로 하자 등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그저 똑똑함, 현명함 정도의 사전적 의미일 테니), 최근에는 좀 다르다. 그러니까 스마트하게 일을 한다라는 건 일의 득실에서 '득'을 더 높게 취하자는 의미이고 그리고 이 '득'의 수혜는 오로지 '나'만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스마트의 의미는 똑똑함이나 현명함보다는 '영리함', 또는 '영악함'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나에게 유리하게 결과를 이끌어 오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개인의 성과만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담보한다. 즉 '나만 좋으면 돼'라는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를 정당화하는 말이 곧 '스마트'가 된다.
여기서 타인과의 관계, 타인에게 미칠 영향, 협업을 통한 일의 완성이라는 좀 더 관계지향적인 가치는 모두 말살된다. 그건 스마트함의 반대말인 '바보 같음(Stupid)'에 다름 아니다. 스마트라는 개인득실의 가치관 확산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 행동의 가치를 평가하는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부차적인 것으로 미루게 되고 나아가 도덕, 윤리는 '바보 같은 짓', '손해 보는 짓'으로 폄하하게 된다. 이런 스마트한 가치관은 비단 회사 동료나 친구사이에서만이 아닌 남녀간에도 발휘된다.
연애에서 오는 쾌락(이득)은 즐기고 싶지만, 상처라는 아픔(손해)은 감수하고 싶지 않으려는 성향이 곧 연애에서의 스마트함이다. 때문에 남녀관계에서 사랑하는 감정보다 중요한 건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심이자 자기방어 기제다. 그래서 쉽게 감정을 내어주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자산, 즉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고 때문에 투자한 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혜택을 득하고자 한다. 내 자존은 지키면서 상대의 배려는 받으려 하고 나는 상처받지 않지만 상대의 사랑은 취하려 한다. 이건 단순한 밀당을 넘어 거래다. 최근 유행하는 '썸'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단순히 Something의 준말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자본을 놓고 좀 더 크게 이익을 회수하고자 하는, 양자간에 벌어지는 흥정의 과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하는 분산투자 전략이 곧 어장관리가 된다.
'스마트함=능력있음=개인만의 성과'로 공고하게 완성된 이 시대 극단적인 개인 이기주의는 '스마트하다'라는 긍정적 느낌을 가지는 단어로 간단하게 정당화된다. 그리고 우리는 바보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도덕과 윤리로부터 탈출하여 스마트한 이기주의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한 마디로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관마저도 강요받아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가 얻는 건 관계의 말살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서로간에 자행되는 무한소외의 장에서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로 살아가야 하는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