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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현실

#82

by 빨간우산


가상은 현실을 모사해왔지만
언젠가부터,
가상은 현실과 동등한 현실로서 취급받기 시작했고
어느덧,
현실이 가상을 모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원형과 모사의 관계는
역전되었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은
인류의 전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농업혁명이 수천년, 산업혁명이 수백년이 걸렸다면, 디지털혁명은 불과 수십년이 채 안걸렸다.)

이제 실감나는 현실감이란
얼마나 가상과 유사하게 도달하느냐에 달렸으며
그 유사성을 획득하지 못했을 땐
드러내지 말아야 할 비현실적인 무엇으로 취급된다.

우리는 허공에 둥둥 떠 있은채
우리를 떠받치고 있는 땅이 없다는
감추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
밑바닥을 내려다보면 안 되는
이상한 운명에 처해있다.


플라톤이 이 광경을 지켜본다면

어떤 심정이 되었을까.


이제 우리에게
메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은
정말로 주어졌다.


무엇을 삼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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