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고 웬만하면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식비 절약이나 건강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요리의 즐거움 때문이다. 사실 아무리 집에서 요리를 한다고 바둥거려도 밖에서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맛과 다채로움을 따라갈 수는 없다. 어떤 요리라 해도, 한 두 가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직업적으로 오랜 시간을 투자한 사람을 이기기는 어렵다. 게다가 정교한 맛을 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그 번거로운 과정도 부담스럽고, 조금 특별한 재료가 필요한 요리일 경우에는 노력 대비 결과의 면에서도 역시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흔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해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음식인 경우엔 웬만하면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다. 하지만 얼마 전에 돼지 국밥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성공시켜 낸 후엔, 자신감이 붙어 뭐든 해볼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한다. 그리고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도전해 본 요리가 '족발'이다.
대개 웬만한 요리들은 집에서 손수 하게 되면 앞에 '집' 또는 '수제'라는 글자를 붙여 직접 만든 음식이라는 것을 강조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집밥'이 있고 '집반찬', '집김치' 또는 '수제 만두', '수제 김밥' 등의 명칭이 그렇다. 하지만 '집족발', '수제 족발'이라는 말은 도통 들어보지 못했는데, 역시나 집에서 할 만한 요리가 아니기에 그럴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족발이 매우 땡기는 날이 있었고, 국밥을 성공했던 기억에 힘입어 안될 게 무엇이냐 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마트에서 돼지 족발을 사기에 이르렀다. (막상 족발을 살 수 있겠나 싶었지만, 의외로 마트에 잘 포장돼 진열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족발을 집에서 많이 해 먹는지도..)
족발을 시도해 본 결과를 먼저 얘기해 보자면, 맛은 있었으나 다시 할 요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래도 이건 웬만하면 사 먹는 게 좋다는 결론. 단순히 맛 때문이 아니다. 생각보다 맛은 꽤 나는 편이고 실제로도 맛나게 먹었다. (물론 맛집으로 소문난 족발에 미칠 수는 없다.) 다만 요리의 과정 때문인데 특히, 그 냄새 때문이다.
일단 요리를 하다 보면, 왜 족발에 그렇게 강하고도 특이한 향신료가 여러 가지 들어가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돼지의 발 아닌가. 신발을 신고 다니는 인간의 발도 그렇게 냄새가 나는데 한평생 사는 동안 진흙을 비롯해 온갖 떠올리고 싶지 않은 물질들을 밟고 살았던 돼지의 발은 어떻겠는가. 예쁘지만은 않은 생김새도 한몫한다. (오래 끓이고 나서 쪼그라들면 그 모양은 더 괴기스러워진다.)
다행히 특이한 재료, 그러니까 팔각이나 정향, 월계수 잎, 말린 고추, 통후추, 흑설탕 등이 이미 준비되어 있어 재료를 마련하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만한 재료들이기도 하다.) 레시피도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수육 요리와 마찬가지로 씻고 한번 끓여낸 뒤, 재료들을 넣고 그저 오래 끓이기만 하면 된다. 재료들의 비율이야 요즘 유튜브에 얼마나 잘 나와 있는가. (오히려 너무 많은 컨텐츠가 있어 선별하기가 더 어려울 뿐.) 대략 시키는 대로 차근차근 넣고 잊어버린 채 다른 일을 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족발이라 조금 더 시간을 요할 뿐. (수육이 1시간 정도라면 족발은 3시간은 필요하다.)
문제는 꺼내고 난 뒤다. 껍질이 말려 올라가고 살코기가 드러나며 온갖 향신료와 간장, 설탕 내음이 물씬 풍기는 게 '맛있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제 썰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려움은 살코기를 발라내는 그 마지막 과정에서 찾아온다. 아무리 강한 향신료들을 넣고 그렇게 오래 끓여냈음에도 불구하고 뼈에 붙은 살코기를 발라내는 과정에서 후욱- 하고 들어오는 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자극적인 누린내는 갑자기 입맛을 싹 가시게 만든다. 물론 레시피가 부족하거나 충분히 잘 오래 끓여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은 향신료를 얼마나 더 오래 끓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래서 그 냄새 때문에 먹을 수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써는 과정에서만 그렇고 썰어낸 고기에 소스를 자작하게 뿌려 새우젓과 함께 먹으면 파는 것과 얼추 비슷한 맛이 난다. 누린내 따윈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단지 써는 과정에서만 잠시 올라왔다 이내 사라지는 냄새였던 것이다. 추측컨대 아마도 업장에서도 써는 과정에서는 그런 냄새가 날 수 있겠지만, 소스에 다시 적셔 접시에 내간 음식에서만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겠는가. 맛집에서는 써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까지 완전히 다 잡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마도 역시 안쪽 깊숙이 칼을 넣어 써는 과정에서 올라오는 냄새까지 다 잡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어찌 되었든 먹는 사람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결과적으로 집에서 해본 '집족발'도 충분히 맛있었다. 다만 요리 과정과 썰고 담는 과정만 겪지 않는다면 더 충분히, 더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일단 기억해 버린 그 냄새는 먹는 과정에서도 위력을 발휘하며 마치 환청이 들리듯, 환향이 코에서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한 번쯤 해 볼만 하지만 여러 번 해 먹을 음식은 아니라는 게 결론이다. (예전에 해본 돼지국밥과는 완전히 다른 결론이다. 돼지국밥은 조만간 또 해먹을 생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집족발도 충분히 맛있지만 역시나 파는 족발에 비교하자면 뭔가가 부족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다른 음식보다 특별히 더 많이 느껴지는데, 아마도 가게에서는 기본 향신료 외에 나름의 비법이 되는 무언가를 더 넣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향신료와 자극적인 소스가 중요한 요리다 보니, 아마도 이것저것 더 넣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요리일 것이다. (궁합만 맞는다면.) 그러니까 집 요리와 파는 요리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종류의 음식이랄까.
아, 한 가지 중요한 팁을 말해보자면, 설탕은 웬만하면 흑설탕을 쓰는 게 좋으며 꼭 레시피의 정량대로 다 넣어야 한다.(단 맛이 특별히 중요한 요리다. 설탕량을 입맛 따라 조절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리고 고기가 꽉 차는 냄비를 활용해 꼭 족발이 다 잠기도록 해서 끓여야 한다는 점이다. 안 그러면 구석구석 맛이 잘 배지 않기도 하고 중간중간 뒤집어줘야 해서 매우 귀찮아진다. 뭐, 이런 팁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말이다. 썰어놓은 족발을 프라이팬에 소스와 함께 자작하게 한번 더 끓여주면 그만이긴 하다. 간만 잘 맞춘다면, 웬만한 요리는 실패하기 어렵다. 물론 그게 실패해서 요리를 실패하곤 하지만 말이다.
아, 정말 정말 중요한 팁! 족발이 레드 와인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사실! 집에 남은 술이 와인 밖에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했지만 의외로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다는. 어쩌면 이게 정말 이 글의 가장 중요한 꿀팁일지도.
그러니까 그래서 다시 한번 결론은, 족발만큼은 웬만하면 사 먹자는 것. 하지만 한 번쯤은 재미삼아 해볼만하다는 것. 어떤 동물이든 발에서는 냄새가 많이 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