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모두들 캐럴송을 듣는다. '징글벨'부터 '고요한 밤'까지. 신나고 설레는 음악부터 고요하고 평화로운 성가까지. 팝 가수들의 리메이크 버전도 좋고 가사 없이 기타나 피아노만으로 울리는 선율도 좋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캐럴송 외에도 크리스마스에 생각나는 자기만의 음악이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떠오르는 자기만의 추억이 있듯. 나에게 그런 음악은 이승환의 '크리스마스에는'이다. '크리스마스에는'은 <B.C 603>이라는 독특한 타이틀을 가진 이승환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B.C 603'이 가진 의미는 개인적인 것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전해진다)
이승환의 데뷔 앨범 <B.C 603>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LP를 같이 듣던 때가 있었는데 이 앨범은 그 시절의 나로 기억을 소환한다. 그 당시 나는 음악에 빠져 나를 황홀하게 하는 온갖 음악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이었고 친구들도 그랬다. 그래서 당시 친구들과 나는 앞다투어 새로운 뮤지션의 새로운 음반을 소개해주며 우쭐해하는 것이 일상의 큰 기쁨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승환'이라는 낯선 이름의 낯선 음반을 꺼내 들었고, 당시 가요보다는 팝을, 솔로 뮤지션보다는 유명 밴드의 음악을 즐겨 듣던 시절이라 다들 난색을 표하면서 '무슨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들고 왔냐'는 핀잔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그 음반을 들고 온 친구는 유일하게 LP 플레이어를 집에 갖추고 있던 그 모임의 호스트였고 그래서 못 이기는 척 듣지 않을 수 없었다.
LP를 한 바퀴 다 돌고 났을 때의 친구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이런 힘 빠진 발라드 가요'에는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망언인가) 나 또한 그랬던 기억이지만, 한 번 더 들어보자는 호스트 친구의 간곡한 권유로 우리는 한 번을 더 들어보았다. 마침 겨울이었고 멜로디 선율과 보컬의 보이스가 매력적이어서 다들 음악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 바퀴를 더 돌자 누군가 자연스럽게 LP를 한 번 더 뒤집었는데 아무도 만류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때 우리는 그렇게 이승환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당시 이 음반의 타이틀 곡은 '텅 빈 마음'이었는데 나는 이 노래보다는 '크리스마스에는'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건 왜였을까. 당시 내가 누군가에게 품고 있었던 애틋한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혹은 이 노래에서 이승환 특유의 창법이 두드러져서인지도, 그저 그때가 겨울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때의 우리들은 이승환의 그 앨범에 흠뻑 빠져들었었는데,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우리들이 다른 음반에 빠져들어 그를 잊어갈 때 즈음에 '텅 빈 마음'을 필두로 하여 이 음반이 대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의 이승환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어떤 기획사에서도 받아주질 않아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가불 하여 자체 제작해 탄생했다는 이 눈물 젖은 우여곡절의 음반은 그렇게 나와 우리 친구들을 거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움직였다. 과연 간절함과 순수함이 담긴 음악은 결국에는 그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닿는 게 아닌가 싶다.
'크리스마스에는' 공연 영상 (MBC)
이승환과 그의 음악을 소개하려던 글은 아니었는데 얘기가 길었다. 다시 돌아가서, 그래서 하려던 얘기는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하여 음악을 듣기 위해 모였던 그때 그 자리에 대한 기억과 관련된다. 그때 같이 음악을 들었던 친구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아마도 정작 내가 정말로 그리워하는 것은 같이 한 공간에 모여 음악에만 집중하던 그 시간들, 그 경험의 온전함이다. 음악 몇 곡에 그렇게 황홀해 할 수 있던 열린 마음부터, 같이 모여 음악에만 집중하고 음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순수한 대화들. 음악이 배경음악이나 노동요 같은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감성을 채워줄 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유대를 이어 줄 수 있는 매개가 되어주기도 했던 그 나날들.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도 친구들과 내가 겨울을 나기에 충분했던 그 시절의 정서들.
나이가 들면 옛날 타령을 하게 마련이라지만, 그런 건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한낱 감상에 불과하다지만, 단지 그뿐일까.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때 나를 울렸던 그 낯선 가수는 아직도 오로지 음악으로만 대중들과 만나기를 고집한다. 그는 인기를 얻을 수 있는 TV출연이라는 쉬운 방법을 거부하고 아직도 '공연'으로만 자신을 알린다. 인지도를 알리기에는 턱없이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그는 그것이 뮤지션으로서의 자신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리라. 때로 그는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위해 앨범 제작에만 큰돈을 써서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한다. 요즘같이 사운드 음질이 압축된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이 유통되는 시대에는 헛된 노력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는 오직 음악을 위해 그렇게 한다.
사운드의 질에 심혈을기울인 10집
얼마 전 친구로부터 CD 하나를 선물 받았다. 유명하지 않은 뮤지션이었지만 힘든 시절 자신에게 큰 위로가 된 음반이라며 선물을 건네주었다. 아마도 그때 자신이 느꼈던 위로와 감동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가사가 너무 좋다고 말하며 꼭 가사를 음미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는다. 나는 오랜만에 CD플레이어에 CD를 넣고 들어본다. CD케이스에서 가사집도 꺼내 들어 같이 읊조려본다. 프로듀서는 누군지, 작사 작곡과 편곡, 악기 세션은 누군지도 살펴본다. 그렇게 노래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서 삼켜본다. 그렇게 한곡 한곡 삼키다 보면 앨범 전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아, 이 뮤지션은 이 앨범으로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구나, 하며 그 뮤지션의 세계 한 켠을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누군가 조합해 놓은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농축된 감흥이다.
선물 받은 허회경의 앨범 <Memoirs>
음악을 음악으로서, 영화를 영화로서, 소설을 소설로서, 그림을 그림으로서, 예술을 예술로서 감상하는 게 어려운 시절이다. 그럴수록 그때 그 시절의 그 순수한 마음을 꺼내 들어 본다.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노래를 접하며 보냈던 그 겨울은 단지 어느 해의 겨울과도 같은 그런 겨울이 아니다. 내가 천착했던 그 음악, 그 앨범, 그 뮤지션과 함께 친구들과의 시간도 더 또렷하고 더 애틋하게 기억된다. 그리고 그때 그 마음들은 이 노래를 타고 아직도 지금의 나에게까지 전달되어 온다. 음악은 그래서 위대하다. 모든 순간은 지나가지만, 그 순간이 음악에 실리는 순간, 우리는 순간이 영원으로 지속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오늘도 한 뮤지션의 어떤 앨범을 듣는 데 온 영혼의 감각을 집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