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추석은 연휴라 관광지에서 장사를 하는 나로서는 가족보다는 손님이 우선이다. 관광지라도 명절 연휴에는 문 닫는 곳이 많다 보니 이런 날 오히려 문을 열어두면 찾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도 안 좋은 요즘엔 이럴 때라도 톡톡히 눈도장을 찍어놔야 한다. 그렇다. 장사란 쉽지 않은 것이다.
제사 음식이다, 가족 간 모임이다 해서 이래저래 할 게 많고 탈도 많고 말도 많은 한국사회의 명절 풍경이지만, 막상 제주에 떨어져 나와 살다 보니 그것도 그리운 풍경이 된다. 그렇게 지겹던 전과 갈비도 명절이 되면 생각이 나는 것이다. 전 붙일 때의 기름 냄새란 고된 노동의 향기로 각인되어 있지만 그 마저도 생각난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명절에는 전을 부친다. 물론 제사 지낼 때처럼 각종 전들을 종류별로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꼭 빼놓지 않는 건 역시 호박전과 동태전. 전을 부쳐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노릇하게 익은 전을 뜨거울 때 간장도 안 찍고 입에 넣었을 때의 그 맛을. 호박은 달달하고 생선은 포슬포슬 녹아내린다. 기름의 고소함과 따뜻함이 만나 재료의 맛이 최상으로 상승한다. 그래서 갓 부친 전의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해 오픈 준비에 바쁜 아침 시간을 쪼개 굳이 전을 부쳐 먹는다. 바쁘니까 호박전과 동태전 두 종류만. (어쩌다 여유가 되면 동그랑땡도 만들지만 역시나 동그랑땡은 손과 시간이 많이 가므로 웬만하면 패스) 양이 적은 나로서는 밥과 함께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찌개나 국을 곁들이면 더더욱 좋겠지.
뭐든, 해야 해서 하는 것보다 하고 싶어 할 때 그 일의 가치와 참 맛을 알게 된다. 똑같은 일이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명절에 부치는 전처럼. 제사라는 관습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노동으로 할 때의 전과 먹고 싶어 스스로 나서서 하는 요리로서의 전은 같은 재료, 같은 결과지만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그리고 그 맛 또한 또 다르다. 다른 무엇의 수단으로서, 노동으로서의 음식이 아닌, 그저 그 자체로서의 음식을 오롯이 맛볼 때의 그 만족감.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의 대상으로서 맛 보는 음식. 그저 이 순간과 맛에 집중하게 되는. 그런 순간에서야 전은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음식이 되며 나는 그 맛을 즐기는 온전한 미식가가 된다. 그건 다른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 충족된 기분이며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공허함과는 다른 시간이 된다. 그러니 내가 먹는 건 단지 전이라는 음식이 아닌 그 순간의 기분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가족들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나누며 전을 부치는 그 광경이 그립지 않은 건 아니다. 그건 또 그것대로 삶의 또 다른 맛이 된다. 음식의 맛 또한 다르지만, 다르게 맛있다. (명절에 말다툼과 눈치주기만 없다면 말이다.)
결국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건, 재료와 레시피만이 아니다. 음식에는 삶의 과정이 녹아져 있고,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그 맛을 좌우한다. 그러니 결국 음식을 먹는다는 건, 어떤 물질을 먹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하나의 기분이자 분위기를 즐기는 행위이며 관계의 맥락이 반영된 삶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러니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전'이라는 요리가 굳이 명절에 생각나는 것이고 그리움의 매개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의 맛이란 결국 삶의 맛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