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어워즈
재미삼아 <올해의 시리즈>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OTT 서비스 이후에는 아무래도 드라마 시리즈를 많이 보게 되는데, 이제는 매일 저녁 1~2편씩 드라마를 보는 일이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삶의 낙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밤 나의 즐거움이 되어 주었던 드라마 시리즈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보았던 시리즈들을 꼽아 보고자 합니다.
★ 먼저 3위는... <폭삭 속았수다>입니다.
- 극본: 임상춘
- 연출: 김원석
- 출연: 아이유, 박보검, 박해준, 문소리 외
노희경, 박해영에 이어 국내 TV드라마 작가의 계보를 잇는 임상춘 작가의 야심작입니다. 여성과 가족의 문제를 중심으로 폭력과 편견에 대항하는 작가님의 도전적 태도가 배우 아이유의 열연을 통해서 빛을 발한 수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임상춘 작가님의 전작 <동백꽃 필 무렵>이 더 가슴에 와닿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폭삭 속았수다>는 2025년에 공개된 수 많은 시리즈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대작이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지요.
★ 그리고, 2위는... <멜로 무비>입니다.
- 극본: 이나은
- 연출: 오충환
- 출연: 최우식, 박보영, 이준영, 전소니 외
개인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차세대 작가로는 단연 이나은을 뽑습니다. <그 해 여름은>은 정통 멜로 드라마로서 완성도 높은 전개와 감정적 몰입을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드라마가 크게 히트하여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 바로 이 <멜로 무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 또한 매우 완성도가 높고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에 막힘이 없는 전개라 아주아주 인상깊게 본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번에는 전작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네요. 저로서는 아쉬울 따름입니다. 너무 좋아서 3번이나 본 작품이었는데요. 이나은 작가의 멜로물은 정통 멜로의 서사 공식을 기본적으로 가져가지만 이나은 작가 특유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요, 바로 인물들 주변에 늘 결핍과 상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멜로물에 결핍과 죽음이라니,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는 정서인데 작가님은 멜로의 서사에 그런 정서들을 무리없이 잘 녹여냅니다. <멜로 무비>는 특별히 멜로 장르의 설레는 감성보다는 그런 결핍과 상실의 위태로움에 조금 더 무게중심이 실려 있는데요 - 실제로 드라마 내에서 "이거 장르가 멜로 맞나요?"라는 대사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작가님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하는 자조섞인 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아마도 이런 우울한 정서가 짙게 배어있는 점이 흥행을 확산시키는데 어떤 문턱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 되긴 했지만요. 그리고 이 작품은 특별히 최우식 배우에게 주목하게 되는데요, 눈빛의 변화만으로도 인물 내면의 위태로움을 표현해내는 그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작품성에 비해, 너무 회자가 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항상 있었는데 - 각종 시리즈 어워드에서도 언급이 되지 않아 속상하더군요 - 이 글을 보시는 분은 한번 보는 것도 어떨까 권유해봅니다.
★ 대망의 1위는... <은중과 상연>입니다.
- 극본: 송혜진
- 연출: 조영민
- 출연: 김고은, 박지현, 김건우 외
1위를 주기에 주저함이 없었던 작품입니다. 작품의 완결성과 예술성 면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2번 보기를 권하는 작품입니다. 좋은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2번 보면 보이는게 더 많고, 인물을 이해하고 서사를 납득하기에 더 수월하여 더욱 더 몰입하고 동화되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인물의 성격이나 내면이나 1차원적이지 않아서 좋고 - 아마도 이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탁월한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과 그로인해 벌어지는 오해와 질투, 미움과 사랑, 배신과 이해를 오가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시기와 질투에 가려 진정성 있는 우정이 사라져가고 있는 요즘 시대의 모습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주인공(은중: 김고은 役)이 TV드라마 작가로 등장하고, 그녀가 드라마 속에서 쓰고 있는 작품이 바로 이 드라마 <은중과 상연>이라는 설정이 재미있는 시청의 포인트가 됩니다. 드라마 작가의 1인칭 시선에서 쓴 드라마가 상대편 입장을 뒤늦게 반영하여 수정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를 2번 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숨은 장치가 됩니다. 그러니까 첫번째 볼 때에는 은중의 관점에서 본 <은중과 상연>이지만, 두번째 볼 때는 상연의 관점이 가미된 <은중과 상연>의 지점들을 문득문득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그런 발견을 통해 비로소 상연(박지현 役)의 입장에서 그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점이 드라마 속 작가가 만든 드라마라는 설정의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극본 외에도 2가지에 더 주목하고 싶은데, 김고은 배우의 연기와 OST의 탁월함입니다. 김고은 배우의 연기는 이미 영화계, 방송계에서 소문이 파다하고 공개적으로도 여러차례 칭송된 바 있으니 굳이 저까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OST는 음반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지만 수록된 노래들이 자아내는 쓸쓸하고도 애잔한 감성이 드라마 속 인물의 내면을 잘 형상화며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OST로서도, 하나의 음반으로서도 역할과 가치를 톡톡히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세 작품을 말씀드렸는데, 이 외에도 <미지의 서울>, <파인>, <우리 영화> 그리고 아직 미처 다 보지 못했지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 등도 추천할 만 하겠습니다. 특히 <미지의 서울>은 각종 매체에서,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이 뽑은 올해의 시리즈로 선정되기도 했네요. 저 또한 의미있는, 잘 만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박보영 배우는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기점으로 <콘크리트 유토피아> 그리고 이 작품까지, 연기에 집중하는 배역을 맡으면서 배우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어 이 또한 주목해볼만 합니다. 그리고 올해(2026년) 가장 기대하고 있는 시리즈는 역시, 박해영 작가의 신작입니다. 개인적으로 현 시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애정하는 작가인데, 그의 모든 작품(<또! 오해영>,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을 너무너무 사랑하고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관통하는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진정성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기에, 차기작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목은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입니다. 먼저 제목에서부터 박해영 작가의 시대를 관통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말로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워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스스로 입증해내야 하는 부담과 압박, 그것은 누구도 가볍에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니지요. 이번엔 작가님께서 어떤 시대적 통찰을 보여줄 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