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올해의 음반

아주 사적인 플레이리스트

by 빨간우산

인간의 마음을 가장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깊숙이 울릴 수 있는 예술은 역시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에서는 언어도, 개념도, 생각도, 분석도 의미가 없죠. 그저 온몸으로 직접 느끼는 예술입니다. 그런 점에서 삶은 항상 음악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마음은 메말라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저는 구세대라 아직도 [음반] 단위로 음악을 듣는 편입니다. 스트리밍 시대는 음악을 듣기에는 편리하지만, 음악을 듣는 진정성은 훼손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음악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앗아가 버리는 듯해서 아쉬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음악을 음반 단위로 들어볼 것을 여러분들께도 권유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올해 즐겨 들었던 [올해의 음반]을 추천해 볼까 합니다.


먼저 3위는... [멜로 무비 OS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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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감독: 박세준

- 참여 뮤지션: 소수빈, 서영주(of 너드커넥션), TXT, 이준영 등


드라마 시리즈를 좋아하다 보니, 드라마의 OST도 항상 챙겨듣는 편입니다. OST 음반은 그 특성상 아무래도 영상의 이야기를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하기 마련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OST 음반은 자연스럽게 어떤 테마 또는 분위기를 중심으로 결집력 있는 표현을 보여주게 됩니다. - 물론 단순히 삽입곡 모음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 음악이 이야기와 함께 결합될 때는 감상의 감흥이 배가되기 마련인데, 특별히 음악과 이야기가 어떤 지점에서 정확히 만날 경우에는 그 폭발력이 상당한 경우가 있습니다. 제게는 2025년 그 폭발력이 가장 컸던 음반이 바로 [멜로 무비 OST]가 아니었나 싶네요. 워낙 드라마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원작 내에서 감돌던 그 결핍과 상실의 쓸쓸하고도 간절한 감성을 음악이 제대로 지원하여 폭발시켜 주고 있습니다. 특히 드라마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잔잔하게 차오르던 소수빈의 <곁>은 그야말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음을 터트리게 합니다. 그리고 서영주의 <우주인> 또한 이 넓은 우주 속에서의 외로움이라는 감성을 사운드와 가사에서 가슴 저리게 표현하며 이 드라마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음악으로 제대로 들려줍니다. 그의 오묘한 보컬 톤은 그런 공허와 고립의 감정을 증폭시키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재능을 발휘하죠. 이 두 곡만으로도 이 음반은 들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더해 멜로의 서브 라인을 이루던 다른 커플(이준영&전소니)의 이야기를 담는 이준영의 <Under Sunset>은 멜로디와 감성도 너무 뛰어나지만, 원작 내에서 등장인물이 실제로 부르는 곡으로 등장하여 이야기와 한 몸이 됨으로써 그들 서사의 애절함을 절절하게 담아냅니다. 마치 영화 <비긴 어게인>을 연상시키는, 음악을 통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테마가 되는 곡으로 음악이 곧 서사가 되어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립니다. 근래 이토록 반복적으로 많이 들었던 OST 음반이 없을 정도로, OST로서도, 하나의 음반으로서도, 손색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2위는... 사라 강(Sarah Kang)의 [how i rememb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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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duced by Patrick Hizon

- Composed and Lyrics by Sarah Kang


음반 발매는 2022년이지만, 저는 2025년에 처음 알게 되어 한 동안 많이도 들었던 음반입니다. 사라 강이라는 낯선 뮤지션은 '박보검의 칸타빌레'에서 알게 되었어요. 목소리와 사운드가 따뜻해서 음반을 찾아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 멍하게 듣게 되는 음반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Summer Is for Falling in Love>라는 노래(다른 음반에 수록)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 소문이 점점 더 커져 공중파에까지 출연하게 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 덕분에 저에게까지 닿게 되었네요. - 얼마나 감사한 인연인지! - 처음에는 따뜻한 톤과 살랑살랑한 감성이 좋아서 가볍게 듣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자꾸자꾸 듣게 되는 마력을 가진 음반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무래도 그저 가벼운 감성적 분위기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랄까요, 그 따뜻하고 설레는 감성의 밑바닥에는 약간의 쓸쓸함과 그리움의 감성이 침잠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지나온 과거의 기억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달까요. 삶을 돌아보며 회상하게 한달까요. 마침 음반 제목도 'how i remember'네요. 하여간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런 오묘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음악입니다. 음악적으로는 재지(Jazzy)하면서도 트렌디한 R&B 사운드와 함께 포크적인 감수성을 잘 버무린, 클래식하면서도 트렌디한 양면을 잘 갖추고 있는 음악입니다. 특별히 <once in a moon>과 음반 마지막의 <end credits>이라는 노래를 너무 좋아합니다. 꼭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대망의 1위는... 역시 이찬혁의 [ERO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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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duced by 이찬혁

- Composed and Lyrics by 이찬혁


2025년은 음악의 면에서나 화제성의 면에서나 이찬혁의 한 해였다고 볼 수 있겠지요. 첫 솔로 음반인 [ERROR]에 이어 두 번째 음반으로 찾아온 이찬혁의 음악은 이번에도 강력하고도 신선합니다. 첫 솔로인 [ERROR]를 통해 이미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과 뮤지션으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찬혁은 - 물론, 악뮤 시절부터 그의 멜로디와 가사는 빛났었지만요 - 두 번째 음반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마저 아우릅니다. 뮤지션을 넘어 시대를 노래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그런 도약의 시절을 통과하는 느낌입니다. 'K-POP스타' 때부터의 오랜 팬으로서 응원해 마지않는 행보입니다. 특히나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 보여준 그의 무대 퍼포먼스는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한국에서도 '데이빗 보위'같은 자기 연출로 행위예술을 하는 뮤지션이 등장하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역사적 장면입니다. 그가 첫 음반인 [ERROR]에서 80년대 신스팝과 21세기의 R&B를 결합하는 그만의 사운드를 보여줬다면, 이번 음반 [EROS]는 그런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실험하는 가운데 사랑이 멸종해 가는 지금 시대를 풍자하는 메시지를 진중하게 녹여냅니다. 그래서 이번 음반은 사운드에 더해 가사에도 특별히 더 주목할 만합니다. 단지 그가 잘하는 라임을 활용하는 언어형식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메시지'로서 가사가 가진 의미에서도 이번 음반은 특별합니다. 가장 크게 히트한 <멸종위기사랑>은 그가 이번 음반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곡으로, '사랑의 종말론'이라고 표명하는 가사에서뿐만 아니라, 그 경쾌하고 흥겨운 디스코 리듬에서도 사랑이 멸종해 가는 지금 시대의 풍경에 대한 풍자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 때로는 조롱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 하지만 또 아무런 생각 없이 듣다 보면 그처럼 단순하게 흥겹고 신나는 노래도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로 작용하는 이중적 장치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비비드라라러브>에서는 '상한 포도알이 다시 신선해지나'라는 비관과 함께 '어디에 있나'라는 자조 섞인 질문을 흥얼거리고 '알면서도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라고 고해하는 <SINNY SINNY>에서는 왠지 듣는 이를 숙연하게 하는 무력감이 담겨 있습니다. 역시 사운드와 멜로디는 마치 축제처럼 신을 낸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특별히 이번 음반에서 장르적으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가스펠 사운드'의 도입입니다. 음반의 첫 곡 <SINNY SINNY>에서부터 가스펠 사운드는 강렬한 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는데, 처음 들을 때는 정말인지 어리둥절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니 왠, 가스펠?' 하는 그럼 심정이었지요. 하지만 '사랑을 잃어버린 인류의 종말론'이라는 음반의 테마를 알고 나면, 너무나도 절묘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고 설득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스펠 사운드는 <멸종위기사랑>에서 그야말로 축제처럼 폭발합니다. 그 절망적이고 비관적인 가사와 함께. 그러면서도 전작에 이어 80년대의 신스팝의 사운드는 여전히 유지해 가며 음반의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Eve>라는 노래는 이찬혁표 사운드의 아이덴티티를 여전히 증명하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음반은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는 인류의 위기를 경고하는 종교적인 메시지와도 같습니다. 그것은 이 음반을 여는 곡이 '그는 우릴 떠났지'라고 시작하는 <SINNY SINNY>이며, 그런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겠지만 그런 걸 바라는 우린 빛이 날 거야'라고 애써 위로하는 마지막 곡 <빛나는 세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음반의 구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 메시아를 자처하는 이 음반에서 이찬혁은 앞으로 예술이 나아가야 할 시대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는 면에서, 다양한 사운드적 실험을 여전히 해내고 있다는 면에서, 음악을 넘어 퍼포먼스로 우리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아티스트적 면모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앞으로 국내 음악계가 주목해야 할 뮤지션임은 분명합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이번 음반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으로서 손색이 없는 작품이며, 꼭 수상할 수 있기를 간곡한 마음으로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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