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소비자 정보처리 모형
20세기 대중 시장이 형성되고 판매 경쟁이 치열해진 이후 마케팅학은 하나의 ‘학문’으로서, 또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방법’으로서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한 연구와 실험은 꾸준히 계속되어 왔고 그에 따라 다양한 이론과 방법들이 등장하여 합리적인 이론 체계 및 다양한 실전 지침들을 갖추게 되었다. 모든 기업 내 전략가들과 학교 내 학자들이 과거의 업적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더 새롭고 정교화된 마케팅 노하우를 제시해 왔고 이들은 시장에서 큰 효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21세기가 도래하고 세상이 디지털로 변모해 감에 따라 더 이상은 기존 이론과 방법들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마케팅을 연구하는 학자와 실전 전략가들은 거대한 혼란에 빠져 갈 길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 혼란의 와중에도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들이 있으니, 그건 학자도 전략가도 아닌 바로 창의적인 크리에이터들이다.
최근, 그야말로 ‘통’하고 있는 광고 캠페인들을 보자. 2016년을 강타한 SSG의 ‘쓱’을 비롯하여, 미원의 ‘픽미원’, 최근 G마켓의 ‘하드캐리’나 다방의 ‘다다다다’ 등. 이들은 모두 높은 조회수와 화제성 유발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광고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단지 ‘관심’뿐만이 아니다. 사이트 방문이나 구매와 같은 실질적인 소비자들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 광고들이라는 점에서 단지 화제에 그치지 않는다. (SSG는 전년대비 매출 20% 상승, 미원 광고는 20일 만에 조회수 백만 돌파) 마케팅과 광고에 대한 기피 경향이 심해진 요즘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실질적인 소비자 행동 성과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이 광고들 중 특히 SSG와 미원의 경우는 이전 광고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통해 성과를 이루었다는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SSG의 경우, 작년 ‘쓱’ 캠페인으로 처음 브랜드를 접한 것으로 알고 있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전에도 몇 년간 여러 번의 광고 캠페인을 시도한 바가 있지만 소비자들에게 각인되지는 못했다. 그 이전에는 이마트의 생활필수품과 백화점의 프리미엄 제품들을 동시에 구매할 수 있다는 차별적인 혜택을 알리는 데 주력해 온 반면, ‘쓱’ 캠페인은 그런 구체적인 혜택보다는 인상적인 비주얼과 기억하기 쉬운 짧은 카피를 전면에 내세우는 크리에이티브 전략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미원 또한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기존 미원이 가지는 화학조미료의 인상을 천연 이미지로 바꾸고 MSG의 무해함을 알리는데 주력한 반면, 새롭게 ‘픽미원’의 경우는 어떠한 설득 메시지보다 중독성 있는 CM송과 댄스로 소비자의 눈과 귀에 기억되었다.
G마켓의 ‘하드캐리’나 다방의 ‘다다다다’와 같이 최근 성공한 광고들의 경우에도 설득이나 주장보다는 핵심적인 비주얼 컷이나 짧은 메시지를 단순 반복 노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렇게 단순한 접근의 광고는 과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든 전략이었지만, 지금은 과감하게 단순화된 크리에이티브들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으며, 그 효과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광고들은 20세기 마케팅학에서 축적한 전략적 이론 및 방법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으며, 차라리 크리에이터의 직감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때문에 이러한 접근의 광고들이 성공하는 현상은 기존의 이론들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가령 AIDMA 또는 DAGMAR와 같은 기존의 전통적인 소비자 정보처리 단계에서 보자면 새로운 접근의 광고들 보다는 이전 광고들이 더욱 그 단계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제품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욕구가 타당한 이유에 의해 발생되면 숙고를 통해 구매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의 광고는 그 중간 단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주의는 바로 행동으로 이어진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원인은 이렇다. 소비자가 변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소비자들은 순차적인 여러 가지 단계를 거쳐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해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생각’ 하지 않는다. 그들은 반복 노출된 콘텐츠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곧바로 반응한다.(그 반응은 검색이 될 수도, 공유가 될 수도, 조회가 될 수도, 태그가 될 수도, 구매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 반응을 격렬하게 일으키고 싶다면 주의를 더 집중하도록, 몰입하도록 하면 된다. 즉 중독성 있는 주의를 불러일으키면 된다. ‘쓱’이나 ‘픽미원’, ‘하드캐리’, ‘다다다다’처럼 말이다. 그 중독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소비자들은 강하게 반응하고 강하게 반응할수록 자발적 행동은 확산된다. 즉 viral과 판매가 가속화된다. 그렇게 되면 이러한 결과가 다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순환구조가 완성된다.
디지털 시대, 매체 환경은 복잡해지고, 경쟁은 과열되며, 소비자들은 똑똑해지지만, 그래서 마케팅이 더욱더 힘들어진 시대라고들 하지만 오히려 마케팅의 방법론은 더 간단해져 가고 있다. 그것은 따라 하고 싶은 중독성을 가지는 크리에이티브를 단순 반복 노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가 광고 콘텐츠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인다. 즉 주의의 강도가 곧 행동의 확산을 낳는다. 어떤가 간단하지 않은가?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중독될 뿐이다. 이제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생각의 장벽을 넘기 위해 고심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이 무엇에 중독되기 쉬운지 그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그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바야흐로 크리에이티브의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