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eho Lee Dec 08. 2019

Day30 홍인종은 사용가능, 얼굴 그림은 사용불가?

Cleveland 아트뮤지엄, 클리블랜드 인디언즈, the Arcade

생일인 오늘은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를 클리블랜드에서 충분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딸 아이 친구 중에 클리블랜드 출신이 있어 가볼 만한 곳 몇 군데를 추천 받았다.


맨 처음 들른 곳은 클리블랜드 아트 뮤지엄이다. 미국 내에서 가볼 만한 뮤지엄으로 2위에 올랐다고 한다(1위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유니버시티서클(University Circle)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 풍경과 박물관 건물의 조화가 참 멋지다.

간단히 둘러볼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전시 내용이 풍부해서 시간을 많이 보내게 되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대영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 건축물의 일부분(벽화 혹은 기둥)까지 옮겨져 전시되고 있었고, 유럽 미술품을 비롯해서 이집트, 이란, 중동 지방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미술품과 아프리카 미술품까지 전시물이 다양했다. 다만 현대 미술은 상대적으로 전시물이 많지 않아 보였다.


미국 인디언 원주민 예술품 섹션도 있는데, 도기제품 위주로 적은 양이 전시되어 있다(우리가 방문했던 주니부족의 도기가 전시되어 있다!). 미국 인디언 예술품을 보고 싶다면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미국 인디언 박물관이 최고인 듯하다.


전시실 중 하나는 중세시대 기사 갑옷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갑옷들을 보면서 코로나도와 데소토의 북미탐사 장면이 떠올랐다. 온 몸에 빈틈이 없도록 철갑 혹은 사슬갑옷을 두르고 거대한 말을 탄 스페인 기사들을 맞이했을 원주민들의 당황과 공포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원주민들이 가진 나무곤봉이나 돌도끼, 화살은 스페인 기사들의 장갑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 것이고, 맨 몸의 인디언 전사들은 이들 기사의 날 서린 칼날에 하릴없이 쓰러졌을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작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의 존재는 클리블랜드의 경제력과 문화적 수준이 대단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한 때 미국 내 5대 도시의 위상을 누렸으나 이후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지만, 별도의 입장료도 없이 이런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클리블랜드의 저력이 감동스럽다.


다음 목적지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의 홈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Progressive Field)이다. 추신수 선수가 뛰었던 팀으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이미지를 가진 팀인데, 경기장은 바로 시내에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경기장 주변에 팀 마스코트인 인디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한 아내와 딸이 2015년부터 인디언 얼굴의 마스코트 그림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알려준다. 유머있게 그려진 인디언 얼굴이 모욕 내지 조롱의 의미로 비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어쨌건 꽤 귀엽고 친숙했던 마스코트였는데 보지 못하게 되니 아쉽다. 내가 아직 이 땅의 인디언들에게 충분한 감정이입이 되지 못해서일까? 예전의 그 마스코트 그림을 찾아볼 요량으로 한참을 경기장 밖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다가 기념품 상점에서 몇 개 찾아 내니 많이 반갑다.

클리블랜드의 야구팀은 창단 초기에 이름이 여러 번 바뀌다가 팀에서 활약했던 최초의 인디언 출신 선수를 기념하여 인디언즈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기 일정을 확인해 보니 오늘은 원정 경기가 있는 날이라 이곳에서는 경기가 없다. 그런데, 바로 엊그제 여기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경기가 있었다. 우리의 방문이 하루만 빨랐더라면 인디언즈 구장에서 추신수 선수를 볼 수 있을 뻔 했기에 안타까움이 크다. 요즈음 계속 하루 차이로 놓치는 일들이 생긴다.


사실 스포츠팀과 인디언 인권 옹호단체와의 갈등은 워싱턴 DC의 프로풋볼(미식축구)팀 레드스킨즈(Red Skins) 이름을 둘러싸고 최고조에 달했었다. 레드스킨이라는 단어는 인디언들을 비하하는 ‘홍인종’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인디언 인권단체는 해당 이름의 사용이 인종 차별적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으나, 미국 연방대법원은 ‘차별적이지 않다’라고 최종 판결하여 아직도 그 이름은 사용되고 있다.


귀여운 인디언 그림은 사용이 중지되고 홍인종(Red Skins)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는 계속 사용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심정일까?


딸 아이 친구가 추천한 시내 인근의 오하이오 시티(Ohio City)라는 곳으로 이동하여 늦은 점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곳이 뜻밖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가 되었다.


타운홀(Townhall)이라는 식당은 건강식을 주제로 한 매우 창의적인 메뉴들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나는 비빔밥(Bibimbap)이라는 반가운 메뉴를 시도해 보았다. 음식의 형식은 한국의 비빔밥을 차용했으나 그 내용물은 쌀 대신에 컬리플라워 가루에 김치로 간을 하였고, 들어간 야채도 하나같이 독특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파란 하늘과 노란 파라솔 밑의 야외 테이블에서 너무도 근사한 식사를 하게 되었고, 딸 아이가 종업원에게 생일 얘기를 해서 촛불이 꽂힌 디저트까지 받게 되니 금상첨화이다.

클리블랜드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시내에 위치한 아케이드(the Arcade)이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 쇼핑몰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겉보기와 다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건축물이 아름답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는데, 막 신부가 입장하고 있었다. 현재 이 아케이드는 하얏트 호텔로 사용되고 있었다.

클리블랜드에서 하루를 충분히 보내고 저녁 즈음에 톨리도(Toledo)로 들어왔다. 우려와 다르게 우리의 숙소가 있는 웨스트게이트(Westgate) 지역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신도시 느낌이다. 숙소 바로 옆에 홀푸드마켓(Wholefood Market)도 있다. 근래에 아마존이 인수해서 더 화제가 되었던 슈퍼체인인데, 일단 홀푸드가 있다는 건 그 동네 수준이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늦은 점심을 잘 먹었기에 저녁은 패스하기로 했는데, 아내와 딸아이가 생일 저녁 촛불은 붙여야 한다며 컵케잌과 생일용 초를 사서 숙소로 들어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성냥이 없다. 딸아이가 성냥을 구하러 프론트에 갔다가 성냥은 커녕 객실에서 불을 켜면 화재경보가 울린다고 우려 섞인 얘기를 듣고 온다. 그 점을 미처 생각 못했다. 호텔 정원으로 나와 조촐한 생일 축하행사를 가졌다. 충분히 행복하다. 컵케익 위에 놓인 숫자 ‘54’가 많이 무거운 느낌이기는 하지만.

내일은 이곳 톨리도 인근에 있는 폴른 팀버즈 전투지(Fallen Timbers Battlefield)를 방문하고 인디애나주로 이동하여 프로펫츠타운(Prophetstown) 공원과 티피카누 전투지(Tippecanoe Battlefield)를 방문할 계획이다.


이들 지역은 쇼니족(Shawnee)의 위대한 추장 테쿰셰(Tecumseh)의 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다. 그는 인디언 부족들이 연합하여 강력한 인디언 국가를 건설하는 것만이 미국인들에 의한 영토 침탈을 막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그리고 외세의 힘(영국)까지 동원하려 했던 선각자이자 행동가였다.


워싱턴에 있는 미의회 의사당 로툰다(rotunda) 장식 예술품에 등장하는 인디언은 단 두 사람인데, 포카혼타스와 테쿰셰 추장이다(Day 23). 여기서 테쿰셰는 주인공이 아니라 전사하는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이 모습은 그의 장렬한 죽음을 기리기보다는 미국인들이 장애를 극복하고 서부개척의 길을 닦게 된 순간을 기념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의아했던 것 중의 하나가, 테쿰셰 추장에 대한 박물관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인근에 그의 이름을 따온 마을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곳에도 그를 기리는 공간은 찾을 수가 없었다(대신 영국령이었던 캐나다에는 그를 기념하는 장소가 여러 곳 있다). 그가 미국에 대항하여 영국 편에서 싸웠기 때문에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를 기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그의 쇼니족 후손들은 이 지역에서 모두 쫓겨났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 것일까? 내일 전투지 기념공원을 방문해 보면 좀 더 실마리가 풀릴지 궁금하다.


오늘이 30일차이다. 어느새 꽉 한 달을 채운 여행이 되고 있다. 일행 모두 크게 아프지 않았고, 특별한 사고도 없었으니 감사할 일이 많다. 나머지 일정도 무난하게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지도를 펴놓고 그 동안의 여정을 그려 보았다. 아내가 예전부터 요청했던 작업이었으나 처음엔 구입했던 지도를 한 번 잃어버렸고, 다음엔 지도에 경로를 색칠할 형광펜을 구입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이제야 완수하게 되었다. 정말 이곳 저곳 많이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직 태평양까지는 꽤 많이 남아있다. 현재 이동한 거리는 7000마일(11300Km)을 넘겼다.

오늘은 생일 이벤트로 인해 인물 사진이 포함되었는데, 블로그에 개인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했던 원칙과 충돌이 생겨 고민이 있었다. 딸 아이가 사진에 보정작업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나이스 잡!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