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7월 2주 차
리튬 이온 배터리는 100%보다 80% 정도 충전하는 게 좋다고 한다. 배터리에는 '방전 깊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배터리 잔량이 얼마나 높은 지점에서 낮은 지점까지 방전했는지 보는 기준이다. 쓸 때마다 이 방전 깊이가 클수록 배터리 수명이 빨리 줄어든다.
예를 들어 매번 100에서 0%까지 쓴다고 해보자. 이 경우 500회가량 사용하면 총용량이 5분의 4로 줄어든다. 흔히 휴대전화를 이렇게 쓴다. 그래서 1, 2년 쓰면 배터리가 빨리 단다고 느낀다. 반면, 80에서 20% 범위에서 쓰면 2,000회 이상 쓸 수 있다. 즉, 배터리 수명이 4배 가까이 늘어난다.
가끔은 사람한테도 이런 배터리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0% 가까이 쏟아붓고 탈진하거나, 100% 조건에서 시작하기 위해 일을 미루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일하든 놀든 매번 100에서 0%까지 다 쓰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이를 흔히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이든 지치지 않고 오래 하려면 이 80% 법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SNS에서 본 맛집에서 실망한 적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먹은 점심이 그랬다. 완벽한 조명 아래 예쁜 접시, 정갈한 요리, 멋들어진 고명까지. 사진을 보고 외쳤다. 이 집은 꼭 가야 해. 그런데 웬걸 맛은 생각보다 놀랍지 않있다. 오죽했으면 맛집이 아니라 사진 맛집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알다시피 맛집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보통은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감동을 기대한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맛,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맛, 6성급 호텔 주방장 출신의 맛 같은 말을 좇는다. 가끔은 맛보다 말이 더 자극적이다.
그런데 살다 보면 기대가 없어서 더 인상 깊을 때가 있다. 무심코 넘긴 채널에서 본 영화에 감동하거나, 터미널에서 먹은 김밥에 감탄하는 일이 그렇다. 그래서 때로는 지나친 기대가 독이 되는 것 같다. 손님뿐만 아니라 가게에도 그렇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점심을 먹었던 가게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단골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들짐승들과 날짐승들과 곤충들이 모두 모였다.
→ 들짐승, 날짐승, 곤충 들이 모두 모였다.
명사 뒤에 붙는 접미사 ‘들’은 외국어의 복수형을 그대로 옮긴 경우가 많다. 문장 중간에서 자꾸 '들들들' 거리니까 뭔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접미사 '들'이 과하게 중복될 때는 의존명사 ‘들’을 활용해보자. 단어마다 '들들'거릴 필요 없이 한 번에 복수형을 표현할 수 있다. 단, 접미사 '들'과 달리 의존명사 '들'은 앞말과 띄어 써야 한다.
모든 동물들이 모이자 사자는 하이에나들의 무리를 쫓아냈다.
→ 모든 동물이 모이자 사자는 하이에나 무리를 쫓아냈다.
‘모든’이 복수를 뜻하는데 굳이 접미사 ‘들’을 붙여야 할까. ‘무리, 떼’ 같은 말에도 접미사 ‘들’을 중복할 필요 없어 보인다. 사소한 차이지만 ‘들들들’ 거리지 않으면 문장이 읽기 편해진다.
서래(탕웨이)는 해준(박해일)에게 녹색 공책을 챙기라고 한다. 어라,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화면은 파란색 공책을 비춘다. 처음엔 녹색 신호등을 파란불이라고 부르듯 관용 표현이라 생각하고 넘어갔다.
후반부에 서래(탕웨이)가 입은 드레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같은 장소에 있던 사람도 파란색, 녹색으로 말이 갈린 그 청록색 드레스. 이처럼 영화는 녹색과 파란색을 넘나들며 안개처럼 진심을 가린다.
어떤 관점에서는 지독한 사이코패스로, 어떤 관점에서는 지독한 사랑으로 보이게 만든 연출이 독보적이던 영화. 최대한 스포일러를 빼고 내 해석을 말하자면, 두 사람이 상대를 사랑하는 시간은 겹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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