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8월 2주 차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칼칼했다. 출근했더니 목 상태가 실시간으로 나빠졌다. 감기인가 싶어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코로나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몇 달 전 아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 나는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신속항원검사도 접수했다. 그러자 직원이 병원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문밖 간이의자에 앉아있자니 땀이 났다. 하필 온도와 습도 모두 높은 날이었다. 괜히 받는다고 했을까. 후회하던 차에 직원이 나왔다. 직원은 긴 면봉으로 내 목 안을 대충 훑었다. 형식적이었다. 그러고 몇 분을 더 기다렸다. 마침내 직원이 다시 나와서 물었다. 혹시 양성 확인서 필요하세요?
다음날인 화요일은 코로나 증상이 절정에 달했다. 두통과 기침이 심했는데 두 조합이 몹시 힘들었다. 쉴 새 없이 기침이 나올 때마다 어디 세게 부딪힌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환경오염으로 생긴 병에 걸려 콜록거리면서 이상기후로 밤새 퍼붓는 빗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참담했다. SF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리던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된 것 같았다.
목요일부터 증상이 차츰 완화돼서 금요일이 되니 마른기침이 한 번씩 나오는 정도로 가라앉았다. 무엇보다 아내의 간호 덕분이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이웃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이 자리를 빌려 걱정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3개월간 공들인 광고가 드디어 방영됐다. 모델은 손흥민 선수였다. 축구에 관심 없기에 손흥민 선수와 촬영한다는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촬영은 한 달 전이었다. 축구장 크기의 실내 홀을 대여했고 입장하는 인원 모두 신분증과 스마트폰을 검사했다. 사인, 사진 요청 금지에 주어진 촬영 시간은 겨우 4시간 남짓이었다. 광고 촬영에 보통 12시간 정도 촬영한다는 걸 생각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스케줄이었다.
문제는 손흥민 선수의 내래이션이었다. 스케줄 상 그를 녹음실로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의상 버스 안에서 녹음하기로 했다. 작은 버스였기에 나를 포함해 네 명의 필수 인원만 들어갈 수 있었다. 덕분에 손흥민 선수와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앉았다. 버스 안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생겼다.
손흥민 선수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연거푸 외친 것이다. 그의 긍정적인 기운에 버스 안의 긴장이 풀렸다. 촬영 내내 그의 태도는 성실 그 자체였다. 매체에서 보이는 모습과 달리 광고 현장에서 까칠해지는 톱모델을 봤기에 그런 모습이 신선했다. 거만해질 만도 한데 역시 클래스가 다르달까.
준비를 갖추다 (X)
> 준비를 하다
준비의 뜻은 ‘미리 갖춤’이다. 굳이 '미리 갖춤'을 갖출 필요 없다.
기둥 뒤에 빈 공간 있어요 (X)
> 기둥 뒤에 공간 있어요
> 기둥 뒤에 빈 틈 있어요
공간의 뜻은 ‘빈 틈’이다. 따라서 ‘빈 공간’은 ‘빈 빈 틈’이 된다.
그 어두운 내면 속에 (X)
> 그 어두운 내면에
뇌리 속을 스쳤다 (X)
> 뇌리를 스쳤다
내면에 ‘속 내’가 있으므로 ‘속’을 쓰면 중복이다. 마찬가지로 ‘속 리’를 쓰는 ‘뇌리 속’도 중복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복된 게 더 자연스러운 말도 있다. '시범 보이다’나 ‘박수 치다' 같은 말이 그렇다. 이 말들은 중복된 표현도 표준어라고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중복된 말을 쓰는 이유는 '한문'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운 한문 뒤에 쉬운 우리말을 붙이려는 마음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나는 간결한 말과 중복된 말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있다. 뜻을 딱맞게 전하는 말을 고르기 위해서다. 지나치게 간결하면 정확하게 전달 못 할 수 있어서 그렇다.
유병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세바시 강연을 통해 알게 된 문구다. 인권 운동가 안젤라 데이비스의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막연하던 생각이 선명해지는 경험을 했다.
살다 보면 나이, 성별, 경험, 돈 같은 수많은 벽을 만난다. 가끔은 이런 벽으로 둘러싸인 미로를 헤매는 기분까지 든다. 나한테 인스타그램은 그런 벽이었다. 모르니까 관심 없는 척했고 무서우니까 무시했다.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계기는 첫 번째 책이 실패한 원인을 소통 부족으로 생각해서였다. 그전까지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SNS를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솔직히 숙제 같았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했다. 우선 얼굴은 모르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 글로 수많은 사람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를 통해 결국 책이라는 것도 속도가 다를 뿐 인스타그램처럼 읽는 이와 소통하는 매체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벽을 눕히고 다리를 건너자 삶에 새로운 기쁨과 지혜가 생겼다. 앞으로 살면서 벽을 만나면 주저앉거나 돌아서기보다 어떻게 이 벽을 다리로 만들까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예컨대 수학이나 엑셀, 아니면 연애 같은 것 말이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