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8월 4주 차
아직 여름휴가를 못 다녀왔다. 그러던 중 18년에 다녀온 하와이 여행 사진을 봤다. 하와이 공항에 내리니 다른 시계가 주어진 것 같았다. 마치 시간이 줄어드는 타이머처럼 느껴졌다.
모래 위에 찍힌 수만 개의 발자국. 바다는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의 흔적을 지웠다. 구름에 걸터앉은 무지개가 노을에 조금씩 녹아 없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처럼 휴가에선 일분일초를 절감하게 된다. 그런데 평소에는 시간의 소중함을 잊기 쉽다. 마치 남아도는 것처럼 시간을 죽이며 사는 것 같다. 한없이 가벼운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SNS를 뒤적거린다. 내게 주어진 시간에는 휴가처럼 끝이 있는데 말이다.
처음으로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여행이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이 있던
일상의 소중함을
모든 여행의 마지막은
제자리로 돌아왔듯이
우릴 떠난 여행도
그리고 일상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때, 함께 날 수 있기를
여행이 우리를 잠시 떠났지만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거란 따듯한 응원 메시지. 처음 봤을 때도 감동이었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울림이 있는 광고다. 여행이 떠났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말로 비유를 완성한 점이 정말 멋진 카피라고 생각한다.
방영일: 20.08.06.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태형
카피라이터: 박종혁, 최연우
아트디렉터: 김호형
감독: 용이
따듯한 제목과 달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힐링 에세이나 자기개발서가 아니다. 이 책은 인류라는 종의 미래를 다루는 진지한 과학 도서다.
책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가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인류를 제치고 살아남은 이유가 사회성이라고 한다. 다른 인류가 10명 남짓한 무리를 이룰 때 호모 사피엔스는 100명이 넘는 무리를 이뤘다.
다른 동물의 무리 생활과 다르게 인간의 사회적 능력은 특별하다. 인류와 가까운 침팬지도 무리 생활을 하지만 이런 사회 능력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손으로 가리키면 인간은 가리키는 곳을 보지만 침팬지 아기는 손끝을 바라본다고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인간만의 능력이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회 능력을 갖춘 인간은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비인간화'에 그 답이 있다.
‘비인간적이다’라는 말은 모순이다. 오직 인간만이, 인간에게, 인간만큼 잔인해질 수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일제강점기를 생각해보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하기에 인간은 서로에게 해로운 존재인 것만 같다.
인간의 이런 어두운 본성을 담당하는 게 '비인간화'다. 이는 다른 사람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실험에서 특정 인간 그룹을 적대할수록 인간보다 유인원에 가깝게 평가했다고 한다. 비인간화를 통해 인간은 공감이나 연민 같은 사회적 능력을 차단하고 같은 인간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
반대로 상대도 같은 인간임을 깨닫는 것만으로 비인간화는 줄어든다. 적대하는 두 그룹 남녀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가 두 그룹 간 분쟁을 완화한 사례도 있다.
희망은 인류 역사가 비인간화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체제는 증가하고 있고 많은 독재 정권이 붕괴했으며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
요즘 같은 양극화 시대에 인류의 생존이 다정함에 달렸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성악설과 성선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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