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디까지 참을 수 있어?

의사소통의 부재

by 배재훈

주문한 팥빙수가 반쯤 녹아서 나올 것 같은 날이다. 6월이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덥다. 대구는 그렇다. 대구 경북의 불볕더위를 다른 지역 사람들은 참을 수 있을까?


작년 말, 대구 수성구에 있는 독립 서점에서 사진 전시를 했다. 14회 차로 구성된 사진 수업과 최종 수업 후, 한 달 동안 사진 전시를 하기로 했는데 갈대 같은 내 마음 때문에 주제를 몇 번이나 바꿨다. 그중 ‘어디까지 참을 수 있어?’도 나의 주제가 될 뻔했던 아이디어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턱대고 찍기보다 사람들을 관찰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멀리서 관찰했을 때는 행복해 보이는 모습들이 많았다. 부자지간의 행복한 캐치볼 시간, 친구들의 신나는 술래잡기, 등. 사연이 궁금해져서 가까이 가 보면 비극 천지였다. 아들을 야구 선수로 키우기 위한, 아버지의 ‘투구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한 호된 꾸지람. 술래잡기의 법칙과 그것을 어겼을 때의 벌칙. 관찰하면 할수록 모두가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다정히 야구를 알려주면 안 될까’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집중할 수 없겠나’


나 또한 몇 개월 전 본가에 갔다가 모친의 욕심과 아들을 배려해주지 않는 대화법에 분노하여 언성 높여 싸우는 도중

나는 “나도 많이 참았다! 참다가 참다가 못 참아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서 말한다!!!!!” 했더니

그녀는 “그러면! 참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참지 그랬나!!!!”

고성이 오가고 본가에 왕래 없이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낸 기간이 수개월.


지지난달 나의 남동생 또한 홀로 본가에 갔다가 부친에게 분노하여

“당신이 우리에게 알려준 게 무엇이냐! 처음 교통사고 났을 때도! ‘찌질한 새끼들 그런 거 하나 해결 못하고’라고 하셨고! 애교 부린답시고 내가 참외 깎아달라고 한 것에도! ‘남자새끼가 서른이 다되어가면서 참외도 하나 못 깎나? 빙시 같은 게’라고 하시고!!! 내가 진짜로, 당신 아들이 참외든 사과든 수박이든 못 깎는 빙시새끼처럼 보이십니까!!! 진짜로!!!”

고성을 내지르고 또한 본가에 왕래 없다. 다음날 부친께서는 동생에게 전화하여 '우리가 뭐가 그렇게 너희에게 불만을 쌓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연을 끊고 지내는 게 더..' 하고 말 수를 줄이셨다고 한다. 동생은 겁 날 것 없이 그런든지 말든지 추석이고 설날이고 일년에 두어번 보면 된다. 사실 그것도 필요없다. 하고 강경하게 나선다. 우리는 가족 해체의 위기에 있다.


모두가 참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 찍으러 다니면서 멀리 보지 않아도 되었다.

이런 이야기들로부터 배우는 것은 대폭발이 있기 전에 대화가 필요했던 것 같아 보인다.

먼저 마주 보고 앉아 ‘이런 일에 대해서 우리 대화 좀 해보자. 사실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있다.’ 하고 용기를 내어 보는 일은 전혀 찌질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멋진 사람이 먼저 말 걸고, 먼저 사과한다. 그건 멋쟁이들만이 할 수 있다.


일단 나부터 전화든 편지든 해보겠다.


며칠만 더... 마음 좀... 다스려보고...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위로'하지 마시라! 그딴게 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