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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지 마시라! 그딴게 위로야?

'아래'로 하셈 ~

by 배재훈

인터넷 검색 없이 맛집을 알고 싶다면 점심시간 즈음에 동네 어르신들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유심히 관찰하시라. 그 안에서 반주하시며 정치 이야기까지 하고 계신다면 어떤 테이블 하나 골라 똑같은 것으로 음식을 주문하시라. 삼십 년간 실패는 없었다.


그날도 점심시간에 직장 상사와 근처 맛집에 들렀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뉴스는 탄핵 이야기로 시끄럽고 옆 테이블 할아버지들은 정치는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앵커가 한마디 하면

“저놈은 진짜 나쁜 놈이다. 저놈은 더 나쁜 놈이고, 사실 정치하는 놈은 다 나쁜 놈들이다.”

따위의 한마디 얹는 식이었다.


옆 테이블 네 분의 할아버지들은 곧 식사를 마치시고 자리를 뜨는데 네 분 중 한 분은 갑자기

“서빙아지매! 서빙아지매!”

두 번이나 바쁜 사람 불러 세워

“잘 묵고 갑니대이!”

하고 나가버렸고, 건성으로 하는

“네, 감사합니다.”

의 대답에 나머지 세 분 중 한 분은

“아따 아지매 목소리 조으네!”

하고 우르르 나갔다.

밥 먹고 물 마시듯 자연스러운 성희롱에 구토감이 밀려와 숟가락을 놓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을 때, 반대편 할아버지 두 분이 계신 테이블에서 한 할아버지가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저런 이야길 하노” 하시고

서빙하시는 분은 빈 허공에 일갈하시는 할아버지 어깨에 손을 얹고

“너무 그러지 마세요 됐심다.” 했다.

이게 10초 안에 벌어진 일인데 ‘이 X끼들 싹 다 돌았나? 너네 이제 때가 됐다. 나하고 같이 가자.’ 하고 염라대왕이 딱밤을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놓아주는 상상을 하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 결제하고 나왔다.


성희롱을 한 할아버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 없다. 그분께는 염라대왕의 무시무시한 딱밤(두개골이 함몰될 정도의)이 추가되었으리라.


우리는 위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A가 B에게 받은 상처를 C가 위로를 할 수 있나?


예컨대 서빙하시는 분이 받은 수치심과 모욕감을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저런 이야길 하노’ 말하는 할아버지가 그 수치심과 모욕감을 다 이해할 수 있나? 다 이해하고 위로랍시고 저런 이야길 하는 건가? 필자가 보았을 때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저런 이야길 하노’의 위로는(이딴 게 위로라고 한다면) ‘나는 저 무리보다 깨어있고, 저런 말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뒤통수에 대고 일갈할 줄도 안다.’의 정도인 것이다. 그 네 명의 무리가 있을 때는 그 앞에서는 한마디 할 줄 모르고 뒤에서 ‘나는 달라.’를 보여 주며 자존감을 채우는 꼴 이상 이하가 아닌 것이다. 수치심과 모욕감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 일갈 때문에 시끄러워서 나머지 손님들이 또 불편해질 수 있으니, 그래도 나는 괜찮으니까 ‘닥치고 먹던 밥이나 먹으라’며 되려 달래는 꼴이라니.


음식점에서 다른 사람한테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을까. 몇 년 전 애인과 해장하러 중국집에 짬뽕을 먹으러 갔는데 해산물을 먹지 못하는 나는 일반 짬뽕을, 애인은 해산물 짬뽕을 시켰다. 몇 번 가본 중국집이었다. 서빙하시는 아주머니와 주방에 계신 아저씨가 사장님이신 걸로 아는데 서빙하시면서

“아지아가 비싼 거 먹어야지 왜 아가씨가 더 비싼 거 묵노 ㅡㅡ^” 하셨다.

음식 쳐다보고,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 음식을 다 먹고 값 다 주고 잘 먹었습니다 하고 가게를 나갈 수 있을까? 없었다.

“당신 딸 당신 손녀 그렇게 키우라. 나 이거 못 먹는다. 농담 같지도 않은 걸 농담이라고 하나. 짬뽕값은 쳐줄 테니까 함부로 입 놀리지 마라. 임자 만나서 X된다 당신 진짜.”

아주머니는 짬뽕 값은 받지 않고 쫓아내듯 우리를 가게 밖으로 밀어냈다. 상대가 농담을 받지 않아서 상황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농담할 때 생각을 하지 않는 꼴일까 왜.


내가 뱉은 말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을 때 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판단하셨을 때만 발화하시라. 그 판단에 책임지실 거라면 발화하시라. 아, 우리는 살면서 말을 할 일이 있나?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을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신체에 같은 흉터를 갖고 있는 사람 둘(A, B)이 있다고 쳤을 때, 그들의 정신적 상처도 같을까? A가 B를 위로할 수 있나?


함부로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것 같다. 정말 위로가 필요해 보인다면 그 옆에 아무 말 없이 있어 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 같다. 허지웅이 모종의 이유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일 때 몇 개월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매일같이 찾아와 밤늦게까지 옆에 누워 휴대폰만 만지다가 집에 돌아가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가장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먼저 위로를 하려 당신의 위선을 선보이려고 입술을 옴짝달싹하지 마시라.

위로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안아주자. 서로 안아주자.

이런 글 쓰는 것 보니 정신적으로나 내면적으로 여유가 없어 보이는 나도 꼭 좀 안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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