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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쉽게 쓰는 글'이라는 별칭이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적는 일기도, 누군가를 위한 편지도, 혹은 사회나 문화, 예술에 대한 글도. 모두 에세이다. 편하게 누구나, 모두가 적을 수 있는 글.
그런데 나는 가장 오래 썼고, 많이 쓴 글이 왜 가장 어려운 걸까.
최근의 소식으로 교수님을 만났다. 5년 만에 뵙는데도 더욱 정정해지신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보다 더욱 나를 환대해 주셨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주시며 그간의 회포를 풀게 되었다. 정말로 반갑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졸업 논문을 적으면서, 미숙했던 당시의 나를 상담해 준 때를 생생히 기억하시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5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긴 시간에 비교해서 나라는 학생의 기억이 진하게 남은 것 같아서, 마음으로 감사함을 계속해서 전했다.
'얘가 혹시 벌써 결혼을 하나? 아, 아니면. 설마 등단을 했을까.'
두 가지 경우 중 하나라고 생각하셨단다. 어쨌든 오랜만의 제자의 연락은, 필연 기쁜 소식일 테니.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한 학번 선배 중에서 소설을 쓰고 싶은 갈망과 목마름이 있었다고 하더라. 방송 작가 일을 해도, 그러다가 결국 자신의 글을 써서 웹소설로 몇 편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내도. 그 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더라. 결국, 쓰고 싶은 글에 대한 갈증은. 그것을 현실에 우회하지 않고 우르르 쏟아내야 된다는 이야기 같았다. 난 다행인 걸까. 인정보다는 단지, 그냥 쓰고 싶었으니까. 언제든이고.
"너도 그런 갈증이 있는 것 같더구나. 나도 그랬었지. 네가 쓴 시가 정말 궁금한데, 혹시 보여줄 수 있겠니?"
떨렸다. 이제껏 혼자서 스스로의 수준을 바라보고, 객관성을 최대한 조립시키며 평가했었다. 다 읽으시고는 조금 울림이 있는 말씀을 해주셨다.
"너는 이런 시를 쓰는구나. 잘 읽었다. 네가 쓰고 싶은 글이 어떤 건지 알겠어. 물론 너의 작품을 다 본 것도 아니지만, 에세이를 주로 쓴 문장의 향기가 난다. 이 소리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하나의 스타일로만 고집할 수는 없어. 너도 익히 알다시피, 아마추어와 프로의 간극은 극심하다. 이제는 너도 정말 작가니까. 소비자와 독자의 시선을 철저히 외면하기는 어려워. 결국 예술이라는 건 인간 사이에서의 인정이 필수적이거든. 글이 쉽고 어렵다기보다는, 대중성이 얼마나 담길 수 있냐이지. 많이 괴로울 거야 이제."
이 말씀에 제대로 된 답을 직접 드릴 수가 없었다. 교수님과의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혼자만의 대답을 중얼거렸던 것 같다.
'저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전 글이 요리랑 흡사하다고 생각해요. 다이닝 같은 누구나 원하는 비싼 음식과 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마니아층이 즐겨 먹는 음식도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전 쉽게 읽히진 않아도, 계속 멈춰 서서 장을 넘기기 어려운 시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상적인 어휘로. 그게 제 속에서 쓰고 싶은 영감이자 확신이라서요. 그런데 참 웃기죠. 전 나태주 시인 팬이거든요, 하하.'
그리고 교수님께 돌아온 톡 답장이 있었다.
'그간 고생 많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등단 축하하마.'
쓰고 싶은 글과, 보이는 시선의 균형을 맞추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은. 처음 글을 쓸 때부터 알고 있었는데. 최근 참 고민이 많다. 내 글이 못나 보이는 것도, 그렇다고 실력이 모자라고도 느끼진 않는데. 끝나지 않는 걱정과 불안감은 뭘까. 평소에 하던 글에 대한 깊은 생각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서. 기쁘고 열망이 넘치는데, 앞길이 쉽지가 않다. 마치 장미만이 가득한 길이랄까. 어쨌거나 이 길도, 꽃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