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설재호 Sep 05. 2016

성과 위주의 시스템에서
누구를 탓하랴

성과 위주의 시스템을 탓하는 우리들.

하지만 그 시스템의 혜택을 받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탓하고 싶진 않다!?


---

누구나 이 시스템 안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모순되고 부조리함에 분개하고, 성토한다.

돌려막기식으로 생겨나는 연구과제와 몰아주기식 선정방식.

행정편의주의식으로 관리되는 과제와, 이로 인해 정작 소홀할 수 밖에 없는 연구.

성과 위주, 숫자 위주의 연구 관리/행정에 불만이 많다.


그 불만의 기저에는,

내가 하는 연구에 대한 가치를 몰라주는 무지한 관계기관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대학원생 인건비도 안빠지는 아주 약소한 돈으로 생색내려는

연구행정부처에 대한 저항감이 있을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정작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스스로의 책임은 빠져있다.

과제를 신청하고 선정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고 여기지만,

내부 시스템에서 평가자로 역할을 수행할 때는, 그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성과주의식 점수판에

'객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한 숫자'를 기여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신성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결국 그 숫자가 부메랑이 되어, 이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

대학원은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순전히 과제에서 배정한 연구비에 의존하면서도,

아주 약소한 그것으로 최대한의 생색을 내고 있다.

비단 대학원생의 인건비 뿐이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지원'하는 과제나, 엄청난 규모의 과제나 동일한 평가 기준을 적용하면서,

스스로 '객관적 심사위원'의 역할 행하는 시스템의 내부자들은,

결국 '내 연구주제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기준만으로 평가하고 선정하라'고 요구하면서,

동시에 '남의 연구주제에는 지극히 성과 가능성 중심의 평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김영란법에 걸릴리 없는 회의비 지출을 통해,

결국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아무런 지식의 교류 없는 '연구미팅'을 위해,

제 밥벌이도 힘든 상당수의 학계종사자들에게 한끼의 따뜻한 밥을 제공한다.

"월급은 충분히 못주겠으니, 밥이라도 공짜로 먹어라."


---

그래. 맞다.

나, 연구과제에 탈락했다.

연구의 당위성이라든지, 시의성이라든지, 이론적 배경의 불충분성이라든지..

어떤 분들이 심사했는지 모르지만,

본인들이 심사로 근거한 (그래서 탈락시킨) 이유들이

사실은 당신들 스스로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학문 평가의 경직성이 아니던가?

나는 유연하게 연구하도록 지원받고 싶지만,

이 학계의 카르텔의 진입장벽은 견고히 지키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는 심사평들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탈락의 감상평이다.


---

그래.

이 성과 위주의 시스템 내부에서 무엇을 바랬던가.


작가의 이전글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공감하는 척 하지도 말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