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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Apr 06. 2021

문송하게 데이터 분석가 되기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커리어 전환 + 약간의 내 이야기

대학 때 이후로 첫 투고 요청이 들어왔다. 약간 혼자 쓰는 느낌이었는데, 적잖은 동기부여를 받았다. 사실 지인들도 가끔 내게 묻는다.

넌 어떻게 하다 그렇게 데이터 분석을, 그것도 영국에서 하고 있는 거야?


아, 사실 나도 신기하다.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면 아직 낯설다. 그 말인즉슨, 내 능력과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영국에서 일을 하려면 비자와 이 곳에서의 학위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능력자이신 아내님 덕분에 비자는 있었지만 영국에서 공부를 하진 않았다. 우리 팀 약 30명 중에서 영국/유럽 또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건 나와 한 개발자 친구 (뉴질랜드 유학파 출신) 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학위가 이공계열인 것도 아니다. 문과 출신에 사회과학 전공- 전형적인 문송한 타입이다. 그래서 종종 한 모임에서 가장 비용을 안 들이고 잘된 케이스로 꼽힌다. 딱히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나는 지금의 나를 계획한 적이 없다. 내가 가진 신앙 안에서 나는 별로 자랑할 것이 없다. 그래서 나처럼 non-technical background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커리어 전환을 생각하시는 분들께 주변 사례를 들어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먼저 정리해봤다.


영원히 non-technical 할 수 없다

일단 문송하게 출발하더라도 영원히 technical한 부분을 모를 수 없다. 한국에서 방송국을 다니다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직을 하고 6개월 동안 내가 겪어야 했던 진동만큼, 문송하다면 숫자와 논리에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길고 장황한 문장 대신 한 문장 안에 결론부터 도출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결론에 대한 논리도 숫자를 중심으로 간결해야 한다. 


아래에 언급했듯이 Digital - Analytics tool은 그런 점에서 쉬운 시작을 돕는다. R, Python으로 수집된 로그를 뒤져서 쿼리를 날려서 뽑아서 visualisation 하는 과정을 Analytics tool은 생략한다. 가장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데이터들을 쉽게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여기에서 멈추면 쉽게 기회는 오지 않는다. JavaScript, HTML, CSS, SQL 더 나아가 R, Python은 주니어로 멈출 것이냐 미드레벨로 옮겨갈 것이냐를 구분하는 잣대이다. 따라서 단순히 취업이나 미래 전망이 아니라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 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무언가를 깊게 파는 것을 좋아하고, 논리관계가 중요하며, 계속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면 개인적으로는 잘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Digital vs Business/Academic

데이터 분석을 공부한다면, 어떤 데이터를 분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회사들의 온라인 비즈니스와 관련한 데이터일지, 아님 /오프라인 상관없는 회사 경영이나 학문적인 데이터인 것인지. 에어비엔비에서 코로나 확진자수가 증가했을  타격을 받은 지역별 host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모바일앱에서 예약률이 감소한 지역 또는 마케팅 캠페인을 분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business analyst적인 일을 하고, 후자는 digital analyst적인 일을 한다고   있다.


나와 같은 Digital 데이터 분석가들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하고 스스로 대답도 한다.


우리 웹사이트/모바일앱 KPI 데이터는 어떻게/뭘 수집해야 하지?

홈페이지에서 방문자들이 얼마나 많이 'Learn more' 버튼을 클릭하고 있어?

지난주 매출이 전주 대비 떨어졌는데 원인이 뭐야? 해결책이 뭐야?

우리 제품 페이지에서 사용자들은 어떤 행동을 주로 해?

결제 페이지에서 completion rate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어떤 테스트를 해보면 좋을까?


개발자에서 데이터 관련 커리어로 전환을 고민한다면 대부분 위와 같은 질문보다는 아래의 질문에 대해 답을 내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는 것 같다. 평균 연봉이 좀 더 높기도 하고, 조금 더 엔지니어스럽다 해야 할까. 커뮤니케이션에 들여야 하는 노력도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도 있다. (less communication = less stress from people)

데이터를 보니 가입 3개월 이내 churn rate이 높다. 각 사용자들의 예측된 churn score은 얼마일까?

매출이 올라갈 때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variable이 무엇인가?


Analytics Tools vs 통계 언어 

사실 analytics tool R, Python 같은 통계 언어는 상호보완적이다. 다만 Analytics tools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과 SQL 데이터베이스, 로그 분석을 SQL, R, Python으로 하는 것은 효율성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analytics tool 먼저 배우는 것을 추천한다. 쿼리를 날리는 정도의 SQL 학습 난이도가 높지 않지만, SQL   이상을 써야 하는 분석도 GA 하면 3 안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굳이 비교한다면 개발할  libarary 쓰는 것과  쓰는 것의 차이랄까... SQL 아주 잘하는 개발자라 하더라도 analytics tools 통해 유의미한 데이터란 어떤 것인지  구조를 확인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GA 쓰는 웹사이트가 5천만  정도 된다고 하니, GA AA 가지는 표준으로서의 위치가 있다.


한국은 반대인 듯하다. 소프트웨어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는 문화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드물겠지만 CDP를 일찍 구축해서 on/offline 데이터들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어떤 배경에서든 digital maturity 관점에서는 부정적이다. analytics tools의 부재로 인해 조직 구성원들의 data accessibility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SQL이 쉽냐 안 쉽냐는 상대적이지만 technical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한 장벽이 된다. 그 장벽은 소위 data-driven marketing을 하고 싶은 조직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다. 의사결정 과정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데이터 분석가들은 actionable insight가 아닌 반복되는 쉬운 data puking만 하게 된다. 나도 그래서 data visualisation에 많은 시간을 쓰자고 하는 클라이언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내 기회 vs 데이터 분석가로 취업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쌓았다면, 기회를 찾아야 한다. 현재 일을 하고 있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사내에서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조금씩 하면서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커리어로 접어드는 길이다. 우리 동료들 중에 프로젝트 매니저 일을 하다가 데이터 분석가가  친구도 둘이나 있다. 우리 PM들은 account management 겸하기 때문에, 일의 scope 정하고 requirement 함께 정리해서  그림을 보는데 능하다. 덕분에 클라이언트들의 반복되는 질문이나, 우리의 반복되는 답변을 어느 정도는 숙지하게 되고 가벼운 질문은 스스로 답하며 커리어 전환을 시작할  있다. 


개발자 출신도 당연히 많다. 개발자 출신 분석가의 장점은 Javascript, HTML, CSS 등을 이용한 Tag management에 능하다는 것이다. GTM도 사실상 JavsScript Injector로서의 특징이 있기 때문에, JavaScript를 잘 알 때의 장점이 크다. 서버 개발자 출신이라면 요즘 트렌드인 Server-side tag management나 GCP, AWS에서의 Data lake 운영 등에 장점이 클 것이다. 우리도 개발자 출신이라면 훨씬 일을 빨리 배운다고 가정하는 편이다.


사내 기회가 아니라 아예 이직/신규 취업을 한다면 처음에 자신의 경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어느 필드나 그렇듯이, 경력이라는 것은 그 도메인에서의 경력을 의미한다. 같은 IT에 있었다 하더라도 데이터 분석 쪽에 경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정받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 만약 이미 어느 정도 데이터 분석과 관련한 일을 현재 회사에서 경험했고 fulltime analyst가 되고 싶은 거라면, 무엇을 할 줄 알고 무엇을 해봤는지에 따라 level이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 영국에서는 assignment를 주고 평가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추가로 데이터 관련 커리어 조언이 필요한 분은 MS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일하고 계시는 양파님 글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하는 내 이야기다. 나의 첫 직장은 상수동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에 세워져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직원들을 교육하던 곳이었다. 미생의 오과장 같은 사수를 만나 야근하며 찜닭도 같이 많이 먹고, 토론도 많이 하고, 새로운 생각들도 많이 했다. 2년의 시간 동안 전략도 했고, 제휴도 했고, 소셜 마케팅도 했고, HR도 하고, 방송 제작도 하고, 심지어 진행도 할 수 있었던 건 그 사수 덕분이었다 (가끔 연락이 뜸해진 지인들에게 뜬금없는 방송 장면 캡처를 받는데, 그 흑역사도 그때 만들어졌다).


우리의 새 생각들은 새로운 것이 없어야 하는 곳에서 당연히 싹을 내지 못했다. 사수는 목포로, 나는 대구로 흩어졌다. 우리의 밥그릇에 거짓도 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신앙으로는 밥 먹고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연스레 금요일마다 먹던 BBQ 황금올리브는 한 마리 만 원이 안 되는 치킨마루가 되었고 도미노는 피자스쿨이 되었다. 당시 여자 친구였던 아내는 기꺼이 스타벅스에서 이디야로 함께 가주었고, 나는 이 사람이면 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신용카드 한도가 다 되어갈 때 즈음 한 테크 회사에서 사업개발 일을 시작했다. 테크 쪽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동기부여는 두 사람에게 받았다. 한 사람은 같은 교회 찬양팀에서 섬기던 구글 다니시는 분이었다. 건반을 잘 치셨지만 늘 시답잖은 농담을 즐기던 분이었다. 이 분이 다르게 보인 건 어느 날 보여주신 구글 캘린더에 꽉 찬 스케줄 덕분이었다. 영어로 적힌 invite들도 많았고 뭔가 하루를 알차게 쓰는 스마트한 종족을 보는 것 같았다. 연희동에 바구니 배달이나 가는 나와는 좀 많이 달라 보이더라.


다른 한 사람은 제주 다음에서 일하던 형이었다. 나는 조직 성과지표를 만든다고 빡세게 야근을 하고 방송사 숙직까지 해서 아침에 다크서클이 왁스에 떡진 머리와 쌈바를 추는데, 이 형은 오늘 제주 날씨가 좋다며 갑자기 휴가를 내고 한라산 등산을 간다 하더이다. 햇살 어린 한라산에서 형의 모습과 홍대 클럽 뒷골목의 토사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발레 워킹하는 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두 회사는 업계에서도 드물게 아름다운 회사들이었고.....



새 회사에서는 언론사부터 소프트웨어 회사까지 다양한 제휴를 경험했는데, 제대로 된 계약서는 한 100장 정도 써본 것 같다. 권도균 대표님이 '제휴는 힘 겨루기에서 이겨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시던데, 일정 부분 공감한다. 서로 원해서 되는 것 같은 제휴도 힘 겨루기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강자가 무조건 이기는 게임은 아니고, 상대적 약자는 약자대로 읍소와 퇴직 위기 코스프레를 통해 힘의 균형을 찾아간다. 그래서 때로 제휴 담당자들의 전화 통화는 누가 불쌍하나 경쟁무대로 변하기도 한다.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본래 안티소셜 했던 내게 통제되지 않는 전화보다 통제된 숫자를 들여다보는 일이 즐거워졌다.


회사의 특성상 약간 business analysis에 해당되는 리포팅도 담당했는데, 숫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 날 전사적인 KPI이자 우리 팀의 KPI였던 검색 점유율을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가설을 갖고 데이터를 들여다 보고 낸 솔루션이 검색점유율을 30% 올렸다. CRO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 그게 나의 데이터 분석과의 첫 접점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직은 이런 데이터 분석과 CRO를 익숙치 않았다. 그 해 내 고과는 A가 아니었고, 나는 개인과 회사의 attribution이 분명치 않은 사업개발 커리어에 대해 처음 회의에 빠졌다. (그때 인사고과를 해주셨던 본부장님은 지난번 런던에서 밥을 사주고 가셔서 모든 섭섭한 감정을 잊기로 했다)


그리고는 GA의 출발점, GAIQ를 공부했다. Growth hacking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카닥에서 CPO 하던 친구가 추천해준 블로그들에서 GA를 많이 이야기하더라. 처음에는 취미 삼아서 공부를 했다. 한국에 데이터 분석가 포지션이 없던 시절이기도 했고, 나는 당시 후배랑 준비하던 제품 만드는 일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다 문득 영국에서 유학 중인 아내가 예정에 없던 취업을 해버렸다. 얼떨결에 영국에 온 나는 계속 스타트업 준비를 하면서 영국 스타트업 경험을 해봐야겠다 결심했고, 한 여행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나름 Seedrs에서 10억쯤 투자도 받고 MS에서 엑셀러레이팅도 받는 유망한 곳이었는데, 데이터와 관련해서는 기반이 취약했다. 여기에서 performance reporting 하는 파이프라인도 만들고 지금으로 보면 기본적인 GA를 세팅했다. 그러고는 스타트업을 시작했고, 후배가 제수씨 반대로 팀을 나갔고, 고생했고, 문을 닫았다 (나중에 또 이 경험담은 쓸 기회가 있겠지 싶다).


한국에 돌아갈까, 영국에서 일을 할까 고민하던 시점에 디플러스 정원혁 대표님과 한기영 대표님과 연이 닿았다. 처음부터 일을 목적으로 대화를 나눈 건 아니었고, 두 분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기술 교육 봉사를 다니시는 것을 보면서 뭔가 가방이라도 들어드리면서 같이 봉사하러 다니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이 마음은 여전하다). 아내가 정대표 님과 안면이 있어 소개를 부탁했고, 어느 날 구글 행아웃으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 때 내가 GA 등에 약간의 경험이 있는 것을 아시고는 담당하시던 클라이언트 일에 파트로 같이 하자 해주셨고, 그게 내가 데이터 분석가로서의 첫 경력이 되었다. 그 때 여기에서 인터뷰를 보던 회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군데에서 job offer를 받았고 그곳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아내랑 가끔 이야기 하지만, 내가 영국에서 계획했던 일- 석사, 스타트업 중 어느 것도 계획대로 이뤄진 된 것이 없다. 내 능력 부족도 있을 것이고 주어진 선택 옵션들 중 비용 대비 결과를 고려해 가지 못한 길도 있었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지금의 나와 같은 위치에 있도록 하진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도 괜찮다. 결국 셰릴 샌드버그가 말했듯이 커리어는 정글짐이고 인생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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