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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을 만져주는 사람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의 바람

by 흰남방




어릴 적. 몸살을 앓아 온 몸에서 나는 열 때문에 밤잠 설치던 기억이 유년 시절 기억의 일부를 차지할 정도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강하지 못했다. 몸의 열이 심할 땐 세상이 뒤집히는 것 같았고 작은 소리 조차 나에게 큰 돌이 되어서 온 몸을 누르는 듯한 압박을 주었다. 오감을 통해 세상을 배우던 나이. 때론 읽고 보았던 것들이 꿈 속에서 생생하게 펼쳐지기도 하였다.


아플 때마다 고통스럽던 긴 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손길 덕 이었다. 어머니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린 나를 거실 한 복판에 속옷만 입혀 둔 채 눕혀 밤새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며 나의 등을 어루만져 주셨다. 더 이상 저항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던 나에게 어머니의 부드럽고 따뜻한 손은 이제 안심하고 잠에 들어도 된다는 천사의 속삭임과 같았다. 세상이 뒤집히고 작은 소리가 큰 돌덩이가 되어 짓눌러 고통스럽더라도 날 지켜주는 이가 있어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와 함께 잠에 들었다.


어린 날의 기억들 때문인지 그 이후로 ‘등’에 대한 자그마한 집착이 생겼다. 힘든 일이 있거나 지친 순간이 문득 찾아올 때 누군가 등을 쓰다듬어 준다는 것은 괜찮다는 말 한마디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며 그러한 평범한 위로는 값비싼 어느 선물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요즘 같이 풀리지 않은 일들이 책상 위 빼곡히 쌓여있는 날. 자려고 누운 침대는 차갑게 식어 있어 오히려 잠이 깨어버리는 계절.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이 너무나 그립다. 그저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시면서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들이 모래처럼 다 무너져 내려도 결국 당신은 내 편이라는 위로의 부재 앞에 쓰러지는 요즘의 날.


사람들은 또 다른 안녕의 순간이 찾아오게 되면 그 사람의 등을 보고 인사를 하게 된다거나 등을 돌려 떠난다고 표현을 사용하지만 나에게는 적어도 그러한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그대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면 그것은 그 날이 유독 외롭고 지쳐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의 바람처럼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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