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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Dec 03. 2016

원하지 않는 것 하나, 이별

만남의 조건이자 또 다른 시작의 이유







어릴 적부터 나는 이별 앞에 유독 약한 사람이었다. 잘 다니던 학원을 담당 선생님에게 이번 달 까지만 다니겠다는 한 문장을 말하는 게 너무 어려워 며칠째 시름 앓았던 날이 있었다. 친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몸살을 앓게 되었고 병원까지 가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마음고생을 하는 어린 나를 위해 어머니는 착한 거짓말과 함께 대신해 직접 마음을 전하였다.


가끔은 원하지 않던 이별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가 태어난 해 같이 태어난 검은 푸들이 있었다. 반려견의 이름은 '해피'. 우리 집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소중한 친구였다. 열세 살의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왔던 것 같다. 기나긴 장마 속에서 잠시나마 먹구름이 물러간 날. 두꺼운 구름 사이로 뚫고 나온 여름 햇볕은 자그마한 마당 위로 쏟아졌고 그 속에는 물과 흙, 풀과 꽃 내음이 복잡하게 얽혔다. 해피에게 아침밥을 주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는데 평소와 달리 해피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짧은 꼬리를 흔들며 늘 반기던 녀석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집에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곤 다급히 가족을 불렀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고, 주말인 탓에 가족들은 아직 어느 휴일의 아침이었으니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였다. 다급한 외침에 어머니는 급하게 외출 채비를 하셨고 난 숨을 가삐 몰아쉬는 해피를 품에 안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십분 여채 되지 않았는데 해피는 그 사이 나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열세 살짜리 아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벅찬 기약 없는 이별을 만나게 되었다. 그 날 오후 아버지는 일찍 퇴근하시고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 해피의 작은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날의 공기는 불쾌하리만큼 끈적했으며 파내어진 흙냄새와 풀내음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다. 옅게 흐르는 보라색 방울꽃 냄새도.


그날 이후 여러 형태의 안녕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한 이별들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별조차도 배움의 도구로 사용해버린다면 너무 퍽퍽한 삶이 되어버릴 테니. 이제는 그러한 안녕들이 쌓이는 수만큼 어디론가 잠시 떠났다 돌아오고 싶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것 중 하나.


그것은 만남의 조건이었고

또 다른 시작의 이유였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만날 때마다

마음이 체한 것 만 같다.


원하지 않는 것 하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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