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여름을 지나는 파리에서 누군가 나에게 약속을 잡자고 한다. 그러면 잠시의 고민 후 해가 저물 때쯤 퐁네프 다리에서 보는 게 어떠냐고 되묻는다. 그러한 핑계들로 유월부터 느지막한 여름의 풍경을 그 곳에서 미어터지듯 두 눈에 꾹꾹 눌러 담는다. 그렇게 파리에서의 우리의 여름은 현재도 눈부시게 지나가는 중이다.
어느 날 퐁네프 다리 근처 항상 앉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D가 내게 묻는다. 나눠 마신 와인 한 병에 술기운이 올라서. 사랑하는 게 무엇이냐고. 그러한 질문을 하는 D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스스로가 정의하는 사랑이란 것과는 거리가 꽤나 먼 사람이었다. 사무친 그리움으로 인한 행동이나 습관 탓에 힘든 적 있었느냐 되물었다. 만약 없다면 그건 아직 사랑을 만난 적이 없을 것이란 위로였다. 누군가 가르친 적이 없더라도 무심코 나오는 습관이나 행동이 나에게는 있다는 말도 보태었다.
어느 서류이든 신상에 대한 정보를 적다 보면 종교를 묻는 항목이 있다. 정해진 종교는 없기에 ‘무교’를 선택 하지만 막상 평소에 하는 행동을 보면 과연 종교가 없는 것인지 스스로 의구심을 가지긴 한다.
생각이 복잡할 때는 산속에 있는 어느 절에 간다. 자주 가는 절은 산속이 아닌 산 정상에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한 발씩 디딜 때마다 극락에 가까워지는 행위와 같다고 한다. 걸음걸음 하나에 누군가의 간절함이 깃든 덕에 그 뒤를 보고 따라만 가도 복이 오지 않을까 같은 어설픈 신념으로 산을 오른다. 정상에 올라 법당에 들어가면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있다. 나무 문턱을 넘은 후 인사를 한번 하고 향이나 초에 불을 붙여 조심스레 놓는다. 그 후 불상 앞에서 절을 올리며 근심과 걱정을 그곳에 내려놓고 산을 내려가고자 노력한다.
이처럼 특정한 어느 장소에 가면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행하게 되는 행동들이 있는데 파리에서는 퐁네프 다리가 그렇다. 파리에 여름이 찾아오면 퐁데자르와 퐁네프 다리 사이로 향한다. 여름이 왔음을 체감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여름의 소리를 가만히 듣다 보면 그 목적을 상실한다. 오르세 박물관이 비스듬히 보이고 에펠탑과 그 뒤로 저물어가는 노을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아 당신의 생각을 무심히 읊기 시작한다. 그러다 빛나는 에펠탑에 묵혀둔 우리의 지나간 약속을 떠올린다. 흐르는 강물 위로 부유된 시간을 이리저리 곱씹다 이내 관두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D에게 사랑이라는 걸 해보았다, 덤덤하게 말하였다.
그날은 우리가 나란히 마주하였던 밤하늘과 꽤 닮은 시간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