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아마 늦은 여름이 지나가고 난 냄새 뒤로 옅은 가을 향이 조금씩 불기 시작했던 때 같아. 유난히 푸른 하늘을 만나 참을 수가 없어 가방 속에서 카메라를 꺼냈고 풍경들을 조금씩 담기 시작했지. 특별한 풍경이 있었던 건 아니고 프랑스 동부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었어. 마을에 가게라고는 초입에 있는 빨간색 빵 집 하나와 바로 옆에 작은 펍이 고작일 정도로 고작인 마을. 이름 모를 마을에서의 산책이 끝난 뒤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보는데 한 풍경에서 넋을 잃은 사람처럼 한 동안 침묵했어. 별 거 없었어. 그냥 그 날을 잘 나타내어주는 제주의 어느 바닷 빛 같았고, 달콤한 솜사탕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이 전부인 사진. 사실 그 사진이 좋았다기 보단 그런 하늘빛을 유독 좋아하는 한 사람이 떠올랐거든.
평소에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처럼 굴다가도 그런 하늘을 만나게 되면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한없이 웃었어.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그 순간만큼은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오늘은 어떻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하루하루의 최대의 고민으로 삼은 그때로. 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 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웃을 수가 있었어. 가끔 여기서 걷고 있는 게 지칠 때면 그 날의 하늘보다는 그 사람의 미소가 떠올라. 그리고, 다시 힘을 얻곤 해.
생각해보니 솜사탕 같다던 구름이 부럽다고 하는 사람이었어. 뻔하지만, 당연하게도 하늘을 떠 돌아다니며 세상을 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지. 그럼 난 저기에 보이는 희고 잘생긴 새가 되어보는 건 어떻냐고 물었어. 그래도 그 사람은 구름이 더 좋겠다고 그랬어. 새는 자기가 원하는 곳을 날아다니지만 구름은 바람에 의지해 날아다녀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어. 원하는 곳에 가서 상상했던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느 곳으로 날아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싶다고. 꼭 영화 속의 빠지지 말아야 할 중요한 반전처럼 말이야. 그러면 영화 같은 삶은 사는 게 아니겠냐고 말하면서 보조개를 들어내며 환하게 웃었지. 지금은 그 날의 구름에게 가까워진 그 사람이 부러워. 그래서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 지금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지, 맡고 있는 냄새는, 그리고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은 어떤 건지도 말이야. 유독 푸른 하늘빛 아래 떠다니는 구름들은 나에게 가져다주는 작은 소식들인 건지도 모르겠어.
"구름은 바람에 의지해 날아다녀야 하잖아?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는 것 같아서 더 좋을 것 같아. 저기 푸르고 높은 하늘 같은, 꼭 너처럼 말이야. 구름을 지켜주면서, 세상을 보여주고 깨닫게 해주지. 그에겐 좋은 친구이자, 동반자이고 일종의 선생님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는 새 보단, 바람이 부는 대로 흘러가는 하늘과 함께인 그런 구름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