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겨우의 잎새 만이 앙상한 나무 가지에 매달려 울던 어느 겨울. 나와 수는 프랑스 동부의 어느 국도 쯤을 달리고 있었다. 하루종일 걸었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단 커피 두 잔 위로 쏟아 부은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그 날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서 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 날 독일에서 프랑스로 넘어오기 위해 8시간 여를 도로위에서 보냈던 수에게 운전의 피로는 어떠하냐고 물었다. 주변이 너무 어두워 긴장과 함께 운전은 했지만, 그래서 별이 평소보다 많이 보여 좋았다는 말을 덤덤히 하였다. 그저 별을 하나, 둘 쫓아 오다 보니 어느 새 프랑스 국경을 지났고 생각치도 못한 시간에 우리집에 도착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름이 조금 있었던 그 전 날과 달리 그 날은 맑은 하늘이 떠 있던 날이라 더 많은 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신이 봤던 별들이 얼마나 밝고 빛이 났던 것 들이였는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결국 적당한 곳에 멈춰서서 별을 보기로 하였다.
하지만 왕복 2차선 국도에 가로등 하나 없는 이 곳에서 한 밤 중 차를 멈출 수 있는 구간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 산을 완전히 벗어나버리는 건 아닌 건지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옆 길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였고 우리는 그 곳에 들어가 잠시 멈춰 섰다. 차를 세우고 보니 우리가 멈춘 곳은 마을의 공동묘지 앞 이였지만 문제 될 건 없었고 조명을 끄니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 빛 에 만 의존한 채 프랑스 어느 국도 변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별들은 곧 우리 머리 위로 쏟아 질 듯 했다. 그리고 겨울의 주인들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종종 천체 망원경을 집에 두고 별을 보고 싶다고 하는 수는 별자리에 대한 지식이 많아 나에게 조금씩 알려주기 시작했다. 마차부자리, 쌍둥이자리, 북극성 그리고 옅게 보이는 은하수까지.
어릴 적 부터 여행을 자주 다녔고, 주말이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은하수를 적어도 한 번 쯤은 육안으로 보았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 것이 은하수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처음 이였고, 나 스스로 그 것이 은하수라고 인지를 한 것도 처음 이였다. 그 외에도 수는 여러가지 별자리와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별지시기가 있었으면 더 자세히 알려 줬을 꺼 라는 투정과 함께. 그런 수가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사람의 추억들이 별이 되어 하늘에 떠 있는게 아닌가 싶어. 육안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그렇게 작게 빛나는 별들이 모여 은하수라는 추억의 강을 흐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나의, 우리들의 추억들은 영원히 하늘에 흐르고 있지 않을까? 다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그 별의 위치를, 모양을, 색깔을 잊고 살아가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 하지만 그 별들은 항상 같은 곳에서 밝게 빛나고 있을 텐데 말이야.”
나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수는 은하수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 이였다. 보이지 않는 다고 해서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닌, 우리 머리 위에 지금도 태양과 함께 떠 있는 별 처럼, 수는 항상 빛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빛나는 마음을 가진 또 다른 사람과 나누었던 시간들이 그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 순간에도 그의 마음을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짧은 정적 속에서 어둠 위로 밝게 빛나던 별 들을 프랑스 어느 국도 변에 서서 바라보았다. 날이 추웠던 탓과 아직 많은 길을 가야하기에 우린 다시 차에 올랐다. 수는 하늘의 별 들을 세며 얼마나 많은 추억을 하나씩 걸어보았을까. 그들의 추억들이 별이라는 결정체로 되어 하늘 어딘가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면 아마 수의 마음에서 나는 빛을 받아 밝고 환하게 떠 있지 않을까.
그대들 곁에는 늘 그 빛나는 사랑이 있었다. 수의 말투의 여기저기에서는 그 사실이 지금도 유효 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더 밝은 것에 의해 잠시 가려져 있을 뿐. 프랑스 어느 길 위에서 수의 마음에 전해주고 싶던 말을 조용히 담아 둔 채 우리는 수 없이 많은 별 빛들에 위로 받으며 서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