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남방 Sep 15. 2017

유학의 동기

프랑스에서의 삶 이야기




시작과 끝을 교묘히 흐릴 수 있는 새벽녘 어느 시간을 좋아한다. 그 속에서의 빛과, 색깔과, 냄새 그리고 모든 것 들은 푸석한 피부와 달리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다. 고향을 떠나 유학을 한 다는 게, 꼭 그런 일 인 것 같다. 무엇의 시작이 될 수도, 끝이 될 수 도 있는 오묘함 속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찾게 되는 시간들.






일상에서의 나의 새벽녘은, 마감을 앞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썩 달갑지 만은 않다. 반면, 여행지에서의 새벽녘은 하루의 끝이 끝나는 아쉬움과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거라는 설렘, 그 두 가지가 교묘히 섞이는 공간을 가졌기에 나는 그 어느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간은 프랑스에서의 나의 시간들을 꼭 닮았다.


누군가는 유학은 막연한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탈출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준비이다. 5년이란 시간을 지내온 프랑스는 나에게 꿈같은 삶의 연속들이 이며, 한국에서 배우지 못하는 감성을 배우고 느끼는 공간의 시학들이였다. 그러한 삶의 시적 표현들은 나에게 씨앗이고 거름이며, 향기를 가득 머금은 꽃이었다. 결국,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한 과정들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끝나간다는 아쉬움과, 또 다른 시작의 설렘. 그 과정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행복과 슬픔, 사랑, 이별, 절망, 고뇌, 환희 등. 


겉으로는 추상적인 이유지만 내면으로는 프랑스의 시간들을 위한 본질적인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 학습된 감성들을 글과, 사진 그리고 공간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프랑스 유학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는 너무나 많고, 쉽게 검색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타지에서 살아가다 보면 의외의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객관적인 이지 않은 문제들. 예를 들면, 향수병 같은 정신적인 문제.


수많은 변수와 문제가 존재하면 그에 따른 해결책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 그러한 것들을 견고하게 해주는 건 '동기'이며 '이유'인 것 같다. 데카르트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은 간단하면서도,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문장이다. 모든 것에서 '동기'라는 것은 이 문장과 일맥상통한다. 프랑스어로 하면 동기는 La motivation. 어원은 라틴어 Movere, 움직이게 만들다는 뜻에서 왔다. 그러기에 '동기'라는 말은 즉,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에서는 'Motivation' ; 동기를 적은 동기서를 특히 학교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중요시 요구된다. 한국에서는 자기소개서쯤 되겠다. 프랑스에서의 '동기서'는 결국 자신을 설명하는 샘이다.


가끔 프랑스 대학교의 입학이나 편입을 원하는 친구들이 '동기서'를 첨삭 요청한다. 미천한 글 실력으로 나의 의견을 말해주기는 하지만 사실 누군가의 '소중한 동기'에는 정답이 없다. 그저, 나는 그 소중한 이유를 조금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읽고 느낀 점을 말해주는 정도이다.


한국에서, 특히 입사할 때 '자기소개서'는 하나의 잘 짜인 스토리 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절절한 사연일 수도 있고, 소중한 꿈 일 수도 있다. 물론, 프랑스에서도 비슷하다 말할 수 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소중한 꿈이 적힌 동기서를 더욱 많이 읽어 본 것 같다. 이러한 '소중한 동기', 프랑스 시간 속에서의 '이유'들은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자 거친 풍파로부터 감싸 안아주는 공간이 된다. 


브런치에 기고한 글 중, 메인에 오르지 않고 순수히 검색만을 통해 가장 많은 조회수를 가진 글은 유학의 외로움에 관련된 글이다. 그 누적수를 보고, 조금이나마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나의 20대 대부분을 쓰는 화려한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저 내가 만들어 내는 공간과 쓰는 글 들이 행복을 전해주고, 사람들을 포근하게 안아줬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그런 공간을 위해 수많은 감정들을 삶이라는 공간의 시학들 속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그저 슬픈 대로. 


타지에서의 오랜 시간은 그 이유를 흐릿하게 만든다. 동기가 흐려지면, 나 또한 흐릿해진다. 삶 속에서 내가 흐릿 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그 일로 너무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오늘의 하루가 끝나가고, 또 다른 시작이 찾아오는 새벽녘처럼, 나의 글이 당신에게 나지막하게 말해주고 따뜻하게 안아 줬으면 좋겠다. 잠깐의 푸석한 이 삶이, 따뜻하게 품어 줄 어느 곳의 포근한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