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 5년 차, 어느새 곁에는 외로움만이 남다.
한국을 떠나 올 때만 해도 유학이라는 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조금 더 좋은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행운이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은 막상 경험을 해보면 겉보기만큼 유학이라는 생활이 멋있거나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글을 적는 2016년의 가을. 4년, 햇수로 5년 차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다. 어학 기간과 편입 준비기간을 빼면 3년차이고 정상적으로 프랑스 국립 건축학교에서 학사 졸업학년을 보내고 있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홀로 공부하는 학생이 혹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외롭지 않다 말을 하는 것은 거짓이거나 현실에 대한 외면이라 생각을 한다. 나 또한 힘들다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 외로움 앞에선 나도 여느 사람들과 같다. 처음에는 '혼자'라는 것을 나름 즐기며 외로움에 파 묻혀글을 쓰는 재료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기간이 길어지니 어느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울 만큼 내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다.
5년 차가 되면 1,2년 차 때의 언어적 장벽과는 또 다른 언어의 장벽이 생긴다. 사람이 외롭지 않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상대방과의 감정, 감성의 대한 공유와 공감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은 언어적인 문제뿐 아니라 문화적인 문제도 상반된다. 5년 차 정도 되면 그러한 언어적 문제는 없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할 수 도 있다. 개인의 성향 차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나라, 그 지역의 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그곳의 언어 실력이 증가하는 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상승은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언어의 대한 본인 의지이다. 다르게 말하면, 공부하는 행위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전공계열 공부를 시작하면 그 시간을 따로 내기 위해 요구되는 시간을 소화 하기 위해선 본인의 의지와 체력이 강하지 않은 이상 힘들다. 결국, 처음 어학 공부를 할 때의 그 공부량이 그 이후에 유학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뿌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새로 접하는 언어를 고작 1년이라는 시간에 완벽히 학습하기는 어렵다. 기본적인 의사와 짧은 감정들을 표현 들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이야기들이 마음의 단어들을 온전히 전하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어 버린다. 특히, 건축처럼 심오한 공간의 감동을 말하는 학문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고 전달해야 하는지는 늘 고민이고 걱정이다. 내가 처음 프랑스어를 공부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한국어로 나타내는 나의 감정과 감성을 어떻게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한국어처럼 표현이 다양하고, 감성적 깊이를 지닌 언어를 아직은 보지 못 한 것 같다. 나의 모국어를 뛰어넘지 못한 것 일 수 있지만. 결국, 지금까지도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느낀 감정을 100% 프랑스어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교감'이라는 의미 앞에 퇴색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쌓인 외로움이 나아갈 길 위에 쌓여 나를 느리게 만들 고 있다.
단순히 표현하자면 타지에서의 외로움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유학 초반에 겪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는 다르다. 이러한 종류의 외로움은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슬프며, 벗어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상이 무너진다. 의지 할 곳을 찾아 그 줄 하나를 힘겹게 붙잡고 있는데, 그 줄마저 끝어진다면 벼랑 끝에 서 버린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이럴 때의 유일한 대안은 '시간'이다. 그냥 오늘 하루가 가버린다면, 내일은 괜찮아질까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보면 무뎌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러면서 무너져버린 일상을 조금씩 다시 만들어 가고, 우리는 다시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이다.
결국, 기나긴 유학 생활 끝에는 외로움만이 지나간 흔적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