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의 전 날, 두서 없이 쓴 일기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전 날 일찌감치 눈을 감았지만 잠에 바로 못 들었던 탓에 결국 늦게 잠에 들었고 눈을 뜨니 시계가 8시를 가리키고 있다. 오늘도 고작 몇 시간 잤네. 더 누워 있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날이라. 내일 새벽 노르망디(Normandie)로 떠나기 위해 저녁 늦게 차량 체크인을 미리 하기로 하였다. 24살이 되던 늦여름, 무작정 떠나 처음으로 그곳을 만나게 되었는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가게 되었다. 내가 변한 만큼 그 곳도 많이 변하였을까. 이만큼이나 더웠던 파리에서 물구경 한 번 못하고 여름이 다 가버리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이렇게나마 떠나게 되어서 다행이다.
운동을 다녀오고, 밀린 빨래를 하고 셔츠들을 다리고 내일 먹을 것을 조금 사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일행들과 몽파르나스 역 근처 카페에서 미리 만나 여행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였는데. 시간은 조금 남았지만 미리 가서 책을 좀 읽고 자 하였다. 노트북과 책, 노트, 필름 카메라 하나를 늘 메고 다니는 회색 가방에 쑤셔 넣고 집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볕이 좋다. 조금 뜨겁긴 하지만 꼭 초가을의 볕 같다. 따끔하지만 선선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온다. 휴일인 탓에 주택 가는 조용하지만 조금만 큰길로 나오니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하다.
만나기로 한 카페는 지하철로 환승을 2번 해서 가는 게 가장 빠르다. 그래서 집 앞에 지하철을 타고 2 정거장을 가 내려 환승하려고 하니 타려 하는 호선이 인명사고로 인해 멈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상으로 올라와 근처에 있는 버스를 찾아보니 조금 걸어가서 타야 한다. 가끔 걷던 길이라 크게 개의치 않고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간 뒤 버스를 탔다. 휴일이라 배차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정류장이 지난 후 내리니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가 보인다.
약속한 카페에 도착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찾는 카페이다. 한 번은 11월, 오픈 시간 전 추위에 떨며 기다리다 들어온 적도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본 적도 있고, 홀로 온 적도 있는 곳. 이 곳은 주택가 입구에 위치한 카페인데 일반 주택을 개조해서 사용한 탓인지 다른 지점의 카페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2층으로 올라오면 친한 친구 집의 거실에 온 듯 한 느낌 같다. 편안하면서도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 해가 넘어갈 때, 주택가의 건물들로 쪼개어진 볕 들이 긴 창들을 통해 들어온다. 비어 있으면 같은 자리에 앉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어느새 그 볕이 목덜미 어디 부근에 닿아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가을이 온 것 같은 날씨라서 아니면 여행을 떠나기 전 날의 설렘 때문인지 몰라도 책의 활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또 새삼 파리에 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일 이 시간이면 프랑스 북서쪽, 어느 기암절벽 위에서 바닷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겠다.
여행 떠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떠남의 전 날을 두서없이 쓴 글.
여행의 시간 중 가장 즐기는 순간에 쓰여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