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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제혁 Jan 07. 2024

대화가 필요한 순간

환자가 청각장애인일 때

대화(對話). 사전적 의미로 마주 대(對)하여 서로 의견(意見)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특히 당장 시술을 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서 환자와 대화가 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금요일 오후에 갑작스럽게 외과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담낭(쓸개) 수술한 지 약 250일 정도 된 환자가 황달이 심해 CT를 찍었는데, 담도(담관)에 1cm 이상 되는 큰 돌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경우 응급 시술이 필요하기에 정신이 번쩍 들어 오후 스케줄을 확인하고 환자를 진찰하였다. 

휠체어를 타고 들어온 환자는 39도 이상의 발열로 인해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복통이 심했고, 눈과 전신이 노란 ‘황달’이 심하였다. 황달을 나타내는 빌리루빈 수치는 17.44 mg/dL로 정상수치보다 15배 이상 상승되어 있었고, 염증수치 또한 상당히 높아 패혈증(敗血症) 이 의심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와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환자는 청각 장애인이었다. 수화를 하는 보호자가 오긴 했으나, 친 보호자가 아니었고, 가족이 없는 분이었다. 내시경을 통해 담석을 제거해야 하는 데, ERCP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라고 불리는 특수 내시경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 시술 난도가 높아 시술을 하는 의사는 국내에 약 200여 명 정도만 있고, 출혈, 천공 가능성이 일반 내시경 보다 높은 위험한 시술이라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였으나, 수화를 통해 제대로 전달이 될지 의문이었다. 

10여 분간 그림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였으나, 얼마나 이해가 되었는지는 의문시되었다. 어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환자도 여럿이라서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워 환자를 보면서 말을 하였다. 

“환자분.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지만 지금 빠른 시술을 하지 않으면 패혈증이 진행되어 쇼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쇼크가 발생하면 정말 위험합니다. 저는 의사이고, 의사는 환자를 위해 존재합니다. 위험한 시술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할 테니 빨리 시술 준비를 해야 합니다.”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보호자와 함께 항생제주사와 수액 등의 처치를 위해 병동에 올라갔다. 

오후에 계획되어 있던 다른 내시경 시술이 잘 끝났고, 청각장애 환자의 내시경 시술이 4시 정도에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내시경 준비가 되면 연락이 오는데 30분이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 시술방에 가보았더니…

환자는 시술장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보호자에게 물어보았더니 환자는 시술을 해야 할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 한다며 통화를 해야 한다는 수화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청각장애인이 통화라니! 환자는 무엇인가 많이 겁을 먹은 상태였다. 차근차근 보호자를 통해 설명을 하였으나, 환자는 시술을 거부하고 있었다. 패혈증 상태에서 시술이 늦어지면 혈압이 떨어지는 쇼크가 발생할 수 있고, 쇼크 상태에서는 내시경 시술은 더욱더 하기 어려워진다. 내시경 시술을 하지 않아 담도의 염증을 제거 못하면 환자는 사망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마스크를 잠시 벗고 정말 큰 소리로 말하였다.

“지금 시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분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의사이고, 당신을 치료해주고 싶어요. 너무 걱정 말고 저를 믿고 시술을 빨리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할 테니 빨리 시술방에 들어가세요!” 

목소리를 크게 내도 소리가 그에게 전달되지 않겠지만, 나의 진정성 있는 눈빛과 몸짓을 보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 시술방에 들어갔다. 

ERCP 시에 담도의 선택적 삽관율은 전문가 집단에서도 95% 정도밖에 되지 않아 모든 환자에게 성공을 하지 못한다. 이 환자의 경우 발열도 심하고 환자의 전신 상태가 좋지 않아 빠른 시술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내가 급하게 마음을 먹는다고 빨리 되지 않는 것이 이 시술의 어려운 점이다. 침착하게 마음을 먹어야 더 잘 될 때가 많다.

담도 입구가 있는 십이지장 유두부의 모양이 좋지 않아 삽관이 어려웠다. 시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 나의 심장 박동수는 급격히 증가하며 요동치게 된다. 하지만 이 마음을 잘 다스려야 시술에 성공할 수 있다. ERCP 라는 시술의 가장 어려운 점이다. 나는 시술하는 매 순간 마음을 다스리면서,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시술팀을 독려해야 한다. 

시술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이중 유도철사 기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성공할 수 있었고, 이후 담관을 확장하는 시술을 하자, 다량의 노란색 고름 및 일부의 담석이 배출되었다.  

담도의 담석을 제거하고 있는 ERCP 시술


워낙 황달이 심하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고름배출 및 담관을 확장하는 스텐트 삽입을 하였고, 환자의 전신상태가 호전된 후 나머지 담도의 돌을 제거하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다른 환자들에 비해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설명을 하였고, 환자의 황달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열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퇴원하는 당일. 나는 환자를 진찰한 후 종이에 “다 나았어요 다행입니다.”라고 쓰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환자는 나를 보며 씩 웃었고 보호자에게 수화를 하였다. 

보호자는 “시술 당일에 선생님이 시술을 하고 난 후에 배가 아픈 게 사라졌어요. 열도 안 났고요. 사실 시술 당일에 너무 무서워서 안 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소리를 크게 지르면서 말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 사람이 나를 살리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였다.

100% 시술을 성공할 수 있는 의사는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시경 시술을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전보다 합병증이 덜 생긴다, 그래도 합병증 발생 위험이 높아 시술 도중 정말 주의하면서 한다. 거의 10kg에 가까운 방호복과 차폐안경 등을 입고 특수내시경을 하면 겨울에도 전신에 땀이 난다. 하지만, 이 시술을 하지 않으면 환자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어려운 시술을 하고 난 후 환자가 좋아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팀원들에게 말한다. 

“늦게 끝나서 미안해요. 그래도 오늘도 좋은 일 했어요. 잘 도와준 덕분에 환자를 살렸네요. 다들 나중에 죽어서 염라대왕 만날 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을 살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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