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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제혁 Sep 12. 2024

필수의료 ERCP (췌장담도내시경) 의사는 몇 명일까요

전국에  ***명만 시술할 수 있는 고난도 내시경, ERCP입니다.

최근에 제가 글을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올해 2월과 비교하여 입원환자가 많이 늘었고 (평균 20명 정도 입원시키고 있습니다.....) 특수내시경이 필요한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횟수가 증가하였습니다. 제가 전문으로 하고 있는 췌장담도 내시경(ERCP)은 최근에는 한 달에 50개 이상 하고 있어 이전에 비해 20~30% 정도 증가하였습니다. 환자가 많더라도 저에게 치료를 받고 좋아져서 퇴원하는 건 힘들지만 큰 기쁨입니다. 하지만 이 시술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는 분은 거의 없으실 거 같습니다.


ERCP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소화기내과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과 전문의가 약 3600명 정도 되는데 반해, ERCP를 전문으로 하는 췌장담도학회에서 인증한  '췌장담도내시경 인증의'는 전국에 총 208명만 있는 상황이고, 그중 30대 젊은 의사는 29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2023년 10월 기준) 이렇게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시술 자체가 어렵습니다.

제가 ERCP를 시작한 건 2017년부터입니다. 2016년에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열심히 배웠고 나름 능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ERCP 내시경을 잡는 순간, 좌우전후의 방향 전환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ERCP는 특수한 내시경입니다.  또한 ERCP를 성공하려면 '선택적 삽관'이라고 불리는 담관, 췌관에 가느다란 가이드와이어를 잘 넣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성공률이 80%도 되지 않습니다. (그림 1) 이것을 성공하지 못하면 시술 자체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여 성공률이 98~99% 가 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성장하는데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시술이 잘 안 될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최선을 다해도 환자가 좋아지지 않을 경우 그 자체로도 힘들지만, 보호자와의 관계가 깨지기도 하는 등 고난을 겪게 됩니다.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시술을 그만두게 되고, 실제로 그만두는 분들도 많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 고난을 뛰어넘긴 했으나, 현재도 시술을 할 때마다 가족을  치료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서 조심스럽게 합니다. 이 시술은 그 어떤 명의도 100% 성공할 수 없는 고약한(!) 시술입니다.

그림 1 : 특수내시경을 통해 선택적 삽관을 시도하는 중이다.


2. 시술을 왜 하는지 보호자에게 설명이 너무 어렵습니다.

ERCP 시술은 건강검진 목적으로 하는  위내시경, 대장내시경과 달리 꼭 해야 하며,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들도 잘 모르는 시술인 만큼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대학교수 때는 전공의에게 설명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았고, 2차 병원으로 옮긴 후에는 제가 설명을 합니다. 한 번 설명하고 이해한다면 참 좋겠지만 일반인이 알기에는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병원과 상의하여 유튜브를 촬영하였습니다. ERCP에 대해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 참조를 부탁드립니다.


'ERCP'는 무엇인가요?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핵심만 알려드립니다. (youtube.com)


ERCP 시술 후 꼭 보세요! 환자가 꼭 알아야 할 Q&A 정리해 드립니다! #소화기내과 (youtube.com)



이런 유튜브를 만들고 보호자와 환자에게 반복시청을 하게 해야 그나마 제 설명을 이해합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시술 전 몸상태가 좋지 않아 보호자만 보고, 환자는 시술 후 상태가 좋아진 후에 시청합니다.) 시술하는 다른 선생님들도 설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보호자들에게 시술 동의서 받을 때 췌장염, 출혈, 천공 등의 합병증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시술이지만, 시술을 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그야말로 '배수진'의 마음으로 의사는 시술을 한다고 설명을 드립니다.


3. 시술의 합병증이 발생하였을 때 의사는 너무 힘듭니다.

최선을 다해서 시술을 하여도 의사도 인간인지라,  드물게 출혈, 천공이 발생하여 환자가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의사 또한 심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선한 마음에 시술을 이어가고 싶지만 그만두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때문입니다.....


어떻게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어떤 명의도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의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나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으면 그냥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합니다. 물론 자기 가족이 사망했다면 보호자 입장에서는 책임을 묻고 싶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 경우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됩니다. 형사소송은 다른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필수의료 의사를 그만두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합니다. 저 또한 이번생은 췌장담도 의사로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나,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일을 그만두게 될 수도 있습니다....


설명도 어렵고 시술도 어려운데, 합병증의 위험도 다른 내시경에 비해 높고 소송 위험도 높은 내시경을 하고 싶어 하는 의사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거의 없습니다. 요즘은 힘들고 어려운 것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되물어보면.....

저는 환자가 치료돼서 좋아지면 그게 참 좋았습니다. 전공의, 전임의 때도 필수의료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시술 후에 환자 상태가 좋아져서 저를 보고 씩 웃어주는 환자들이 고마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췌장담도 내시경을 배우지 않습니다. 그걸 모르면서 필수의료를 열심히 하는 의사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러다가는 대한민국의 필수의료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환자가 누구든 간에... 최선을 다할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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