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그들과 만난 지도 어언 30년이 흘렀다. 2년 만에 본 친구들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나 또한 그러겠지.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즐거움도 있고, 고뇌도, 번뇌도 서로 공유하게 된다.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안 힘들어? 일이 많지? 요즘 마음이 복잡할 거 같아…’ 나에게 말해주는 이런 한마디의 말이 고맙다. 일이 많고 힘들고 고되지만, 의사들은 환자가 좋아지면 에너지를 얻어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몸이 고될 때도 있고 원하는 대로 환자들이 잘 치료가 되지 않아 힘들 때도 있지만, 치료가 잘 되어 좋아지면 즐거워진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모든 의사들은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나는 필수의료 의사 중 한 분야인 ‘췌장담도의사’ 다.
2024년 11월 3일 야간에 70세 여자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심한 복통으로 다른 병원에 방문하였고, 시행한 CT 검사에서 담즙이 내려가는 담도가 막혀 시술이 필요하였다. 내시경적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라는 시술을 통해 담석을 제거할 수 있는데, 이 시술을 할 수 있는 ‘췌장담도내시경 인증의’는 약 200여 명에 불과하다. 이 환자는 용인에서 ERCP를 위해 내가 있는 수원의 병원으로 전원 되었다.
다음 날 아침 환자를 진찰하였을 때 환자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의식 상태는 명확하지 않았고 38도 이상의 열은 지속되고 있었다. 복통도 심했고, 염증수치도 어제보다 3배 이상 더 상승되어 피에 균이 있는 상태인 패혈증이 의심되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였다. ‘어제보다 피검사가 더 나빠지고 상태가 좋지 않네요. 담낭의 돌이 담도로 내려온 상태로, 담도가 막혀 담관염이 생긴 거 같습니다. ERCP라는 특수내시경을 통해 돌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 시술은 전국에 200명밖에 못하는 시술입니다. 성공률도 100% 가 되지 않고 출혈, 천공, 최악의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술을 하지 않으면 담관이 막혀 환자가 위험하니 꼭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조심스럽게 하겠습니다.’ 보호자의 긴장하는 표정이 느껴져 다시 말하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잘 될 겁니다.’
2017년부터 ERCP를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많은 환자를 치료하였으나, 시술할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해서 조심해서 한다. 그만큼 어렵고 위험한 시술이다. 내시경이 실패할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ERCP는 다르다. 그 어떤 명의가 와도 성공률이 95~98% 밖에 되지 않는다. 100명 중 2명 정도 실패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내시경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방사선을 쐬면서 검사를 하기 때문에 방사선 차단을 위해 무거운 납복을 입고, x-ray와 내시경을 동시에 보면서 검사를 하는 차원이 다른 내시경이다.
일반적인 내시경과 달리 측시경이라는 특수내시경 (렌즈가 앞에 달려 있지 않고 옆에 달려 내시경 삽입이 어렵다.)을 환자에게 삽입하였다. 위 내로 내시경이 들어갔으나 위강 내에 음식물이 많았다. 담낭염, 담도염이 심하면 위 내의 음식물이 소화가 되지 않아 금식을 충분히 해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는 시술을 짧게 해야 한다. 시술이 길어지면 위 내의 음식물이 역류되어 폐로 들어가 폐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 시술이 잘된다. 무거운 납복이 나를 짓누르지만, 나는 숨을 크게 쉬고 다시 집중했다.
담즙이 나오는 길인 십이지장 유두부는 부어 있었고, 유두부 모양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얼굴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유두부 또한 그렇다. 시술이 쉬운 모양이 있고 어려운 모양이 있다. 쉽게 말해 담관을 뚫어야지만 (담관 삽관) 돌을 뺄 수 있는데 보통 5분 이상 걸리면 어려운 시술이라고 표현한다. 2024년 남자 양궁 결승전에서도 4.9mm 차이로 승패가 갈렸지만, 담관 삽관 또한 1mm 차이로 실패하기도 한다. 이 환자는 최선을 다해 치료했지만 어려웠고, 실패할 뻔하였다. 다행히 췌관을 뚫을 수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담관을 뚫는 데 성공하였다. 무려 10분이나 걸렸으며, 납복을 입고 시술을 하는지라 시술이 길어지고 긴장하면 얼굴에 땀이 맺히고 등은 흠뻑 젖게 된다. 이제는 돌을 빼야 할 시간. 바스켓(그물망 같은 도구)을 사용하여 큰 돌을 제거하였다. (그림 참조)
돌을 제거한 후 담도의 담즙 배출을 위해 스텐트라는 관을 삽입한 후 시술을 종료하였다. 시술이 끝난 후 환자는 상태가 빠르게 좋아졌고 다음날 회진 때 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환자는 담낭절제 수술도 꼭 필요한 분이었기에 담낭수술까지 한 후 퇴원하였다.
퇴원 후 환자는 외래로 왔다. 이날은 담관 스텐트를 제거하는 날이다. 피검사와 x-ray를 꼼꼼히 확인한 후 스텐트를 제거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배가 아파 누워 있던 환자가 다 나아서 외래로 오는 건 의사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아파하는 한 생명을 좋아지게 하여 그와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건 신이 나에게 준 힘이자, 큰 책임이다. 영화 스파이더맨에서 피터가 말하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 큰 힘에는 커다란 책임이 따른다.라는 말은 내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 간직하였다.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이 분은 나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하며 말을 하였다. ‘늙은 노인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때 며칠간 기억이 안 나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 죽다가 살아난 거 같아요. 너무 배가 아팠는데 일어나 보니 하나도 안 아프더라고요. 힘들고 어려운 시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면서 나에게 봉투를 주었다. 나는 절대로 받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환자분은 ‘편지를 썼어요. 꼭 받아주세요’라고 하였다. 우선 진료가 많이 밀려 있는지라 알겠다고 하였다. 환자가 밖에 나가고 봉투를 열어보았다. 봉투에는 5만 원권 7장이 들어있었다. 그동안 고이 보관하였던 것을 느낄 수 있는 꼬깃꼬깃한 지폐였다.
감동을 받았지만 바로 달려 나가 환자에게 봉투를 건넸다. ‘환자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외래로 오시면 저는 그것 만으로도 큰 선물입니다. 다음부터 절대로 이런 거 갖고 오지 마세요. 마음만으로 감사합니다.’
환자는 울먹거리면서 ‘나 같은 노인 살려주셨는데 밥도 한 끼 대접 못하고… 너무 고마워서…’
환자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다음에는 돈 말고 정말 주실 거면 편지를 주세요. 오늘은 마음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