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頑張る

세상엔 찰나로 보내 버리기에 아까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by MONORESQUE

세상엔 찰나로 보내 버리기에 아까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후의 시간을 단단히 다져주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이시이 유야가 연출하고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마츠 소스케가 주연한 영화 '이별까지 7일'은 이러한 순간들을 얘기합니다. 영화의 외피는 단순합니다. 건망증에 시달리던 엄마의 병이 뇌종양 말기로 밝혀지면서 시한부 7일 인생을 살아가는 엄마와 가족의 얘기입니다. 갑작스런 비극, 찾아온 슬픔. 여기저기서 흔히 보아온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그리고 있는 건 피상적인 슬픔, 틀에 짜여진 갈등이 아닙니다. 영화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순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간, 하지만 그래서 소중했고 그래서 중요했던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얘기합니다.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그러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더라면 마주하지 못했을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세상엔 찰나로 보내 버리기에 아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별까지 7일'의 원제는 '우리들의 가족(僕たちの家族)'입니다. 그만큼 가족을 얘기합니다. 한국의 제목이 슬픔의 결말에 눈물을 흘린다면 일본의 제목은 슬픔의 과정을 바라봅니다. 코스케와 슌페이는 형제 지간입니다. 하지만 둘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코스케가 진중하고 과묵하다면 슌페이는 철부지에 활달합니다. 형제지만 이질적인 관계, 같은 피가 흐르지만 부딪히는 둘. 이시이 유야 감독이 응시하는 가족은 부드럽게, 깔끔하게, 정갈하게 정리될 수 있는 가족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별까지 7일'이 그려내는 가족은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에는 아픔, 갈등, 부딪힘, 충돌이 존재하는 울퉁불퉁한 가족입니다. 그러니 엄마의 병, 7일짜리 시한부 인생은 일종의 맥거핀입니다. 영화는 엄마의 아픔으로 인해 밝혀지는 가족의 문제들을 하나둘 드러냅니다. 히키코모리였던 코스케의 과거, 빚더미에 앉은 아빠의 처지. 철부지로 보이는 슌페이가 오히려 온전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보일 지경입니다. 슌페이는 말합니다. '이상한 건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는) 엄마가 아니라 우리가 아닐까.' 세상에는 어느 순간이 없으면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영화는 엄마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아다니는 두 아들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치료의 방도가 없어 모든 병원들이 입원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두 아들은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頑張る, 애쓰다. 영화는 이 말 한 마디에 기댑니다. 모든 병원이 손사래를 치는 상황에서도 두 아들은 두 발을 쉬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아빠와 두 아들이 달리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코스케는 '조깅을 하면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사소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함, 이러한 순간들이 엄마에게 치료의 여지를 안겨줍니다. 세상엔 찰나로 보내 버리기엔 아까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간들은 너무나 사소하고 별 거 아닌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잠시 머물러 이 사소함을 응시합니다. 그 안에서 희망을 찾아냅니다. 다소 진부할 뻔 했던 영화가 삶의 정수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가는 순간입니다. 세상엔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세계가 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기가미 나오코의 변신, '그들이 진심으로 엮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