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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Oct 31. 2017

기묘함이 지루함을 구원하는 순간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오버 더 펜스'

삶이 움직이지 않는다. 열심히 살지만 나아가지 않는다. 직업 훈련 학교에서 목수 일을 하는 시라이와(오다기리 죠)는 평범한 남자다. 평범하게 일하고 평범하게 결혼했으며, 평범하게 아이까지 가졌다. 집업 훈련 학교의 교사 말대로 '어중간한 것'이 시라이와의 삶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삶. 그에겐 목표도 의욕도 희망도 없다. 


끼이익. 끼이익. 새 소리가 난다. 양 팔을 들고 머리를 흔든다. 도로 한복판에서 여자는 기이한 행태를 보인다. 죽은 듯이 살았다는 사토시(아오이 유우)다. 낮에는 놀이 공원, 밤에는 캬바쿠라에서 일하는 그녀는 다이시마(마츠다 쇼타)의 말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여자고, 몸이 썩을 것 같다며 남이 있든 없든 싱크대에서 옷을 벗고 목욕을 하는 여자다. 기괴한 광시곡을 훑는 것 같은 삶이지만 그녀에게도 목표, 의욕, 희망은 없다.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는 대개 시골에 있다. <리얼리즘 숙소>는 무대가 아오모리 현이었고, <린다 린다 린다>는 군마 현 <마을에 부는 산들 바람>은 시마네 현이었다. 그러니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에서 장소는 중요하다. 장소가 주는 공기와 분위기가 영화의 맥락과 틀을 만들어 준다. <오버 더 펜스> 역시 시골 하코다테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장소가 중요하다. 헌데 여기서 더 중요한 건 소리다. 잿빛 하늘을 끼이익 끼이익 가르는 새 울음 소리인지 뭔지 모를 기괴한 소리는 영화의 공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끌고 간다.  


영화는 시라이와의 삶이 사토시의 삶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삶이 진폭이 심한 사토시의 삶을 만나 크게 흔들린다. 시라이와는 사토시와의 만남 이후 자신의 과거를 들춰보게 되고, 건조한 삶에 눈물을 떨구기도 한다. 사토시의 삶이 촉매제가 되어 시라이와의 삶을 진동시킨 것이다. 영화는 이들의 만남을 아름다운 연애담으로도 그려낸다. 사토시의 춤사위에 장단을 맞춰 나서는 시라이와, 앞뒤로 자전거를 탄 뒤 도로를 달리는 둘 위로 떨어지는 뭔지 모를 하얀 깃털, 함께 술을 마시고 대화를 건네는 장면 등이 시라이와와 사토시의 삶이라는 줄기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사토시가 일하는 동물원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말, 거북이, 타조가 우리에서 풀려나 공원을 휘젓는 것이다. 이는 사토시의 소행이다. 덜컹거리는 시라이와와의 관계 앞에서 혼란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대신 동물들에게 자유를 건네준다. 영화는 감옥 같은 직업 훈련 학교에 갇혀 있는 시라이와의  삶, 여기 저기 부딪히고 부딪혀 상처 많은 사토시의 삶에 기회를 주려 한다. 시라이와의 팀 건축과가 출전하는 소프트 볼 대회가 그것이다. '오버 더 펜스'라는 말이 있다. 타구가 외야와 관중석 사이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시라이와는 뒤지고 있던 경기에서 공을 때려낸다. 그리고 그 공은 펜스를 넘어간다. 반복이 반복을 반복하는 지루한 삶에 숨통이 트여지는 순간이다.


<오버 더 펜스>에는 기묘한 것들이 많다. 영화 초반부터 울려대는 끼이익, 끼이익 소리, 뭔지 모르게 추어대는 사토시의 춤사위, 그리고 둘의 연애를 축복하기라도 하듯 흩날리는 하얀 깃털 등. 영화를 기묘한 분위기가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기 기묘한 것들은 시라이와와 사토시의 삶에 균열을 낸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삶, 미친 듯 휘몰아지지만 정체된 삶이 기묘한 기운의 힘을 얻어 '오버 더 펜스', 즉 펜스를 넘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숱하게 지원한 곳 중 한 곳이었다. 6개월째 쉬고 있는 내 삶도 펜스를 넘을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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