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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Nov 01. 2017

호텔을 쇼핑하다

원 나잇의 비용과 하룻밤의 가치

기껏 여행을 떠나 호텔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가 있다. 아침까지 마감을 하다 해외 출장을 갔을 때, 기내 냉방 탓에 몸 상태가 망가졌을 때, 또는 애매한 시간에 도착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늘어진 몸은 침대 속을 파고들고 계획했던 일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처음엔 비행기 티켓 생각에 땅만 쳤다. 다음엔 휴가 소용 가치 계산에 머리만 굴렸고, 결국 그러다 무리해 밖을 쏘다녔다. 하지만 어느새 달라졌다. 이제는 욕조에 온수를 받아 몸을 담그고, 테라스에 잠시 앉아 밖을 내다보며, 가끔은 호텔 내 피트니스, 수영장에 들러 몸을 놀린다. 단 하루라도, 고작 24시간이라도 호텔에 살자고 생각한다. 발품만 팔다 잠시 눈 붙이는 요금으로 무려 100달러, 200달러는 너무 아깝지 않나. 바깥세상 욕심에 안에서 사라지는 돈을 몰랐다. 나이 서른이 넘어 생긴 처신이다.


20대와 30대의 호텔은 다르다. 놀고, 먹고, 쇼핑하기 바쁜 20대에게 호텔이 그저 하룻밤 싸게 동냥할 곳이라면, 놀고, 먹고, 쇼핑하기 피곤해진 30대에게 호텔은 하룻밤 내 집 마련 수준의 쇼핑이다. 대략 8년 전 아직 20대일 때 도쿄 여행을 하며 첫날은 숙박을 잡지 않았다. 오후 비행기라 어차피 저녁 늦게 도착할 예정이었고, 적당히 놀다 새벽까지 음주가무를 할 요량이었다. 체재 시간 2~3시간에 십 수 만원은 사치다. 이틀째부터 잡은 호텔도 최저한의 하룻밤 나기 수준이었다. 고시원 정도 방 크기에 기내에서 떼어온 듯한 화장실. 놀고, 먹고, 쇼핑하기 편하려고 교통만 생각했다. 그래서 단골이 된 곳이 신주쿠 역 도보 5분 거리의 비즈니스호텔이다. 런드리 서비스 따위 이용하지 않았고, 최고급 수영장, 자쿠지, 스파 시설이 있었다한들 관심 밖 떡이었을 것이다. 20대에게 호텔 쇼핑은 ‘원나잇 스탠드’다.


서른이 넘어 떠난 또 다른 도쿄 여행. 출장에 휴가를 이어붙인 이 일정에서 잠자리는 신주쿠 서쪽 출구 쪽에 잡았다. 객실은 22층. 뻥을 조금 쳐 도쿄의 왼편 사이타마 현이 내다 보였다. 호텔 문을 나서면 고층 빌딩들이 이어졌고, 사이사이 점잖게 멋스러운 가게들이 늘어섰다. 환락가와 비즈니스호텔이 가득한 동쪽 동네와는 판이한 세계였다. 여행에서 호텔은 나침반이 된다. 호텔 위치를 중심으로 동선이 짜이고, 그렇게 여정이 꾸려진다. 특히 서른이 넘고 나니 그렇게 그려지는 그림에 신경이 쓰였다. 동네 분위기에 따라 산책의 톤이 달라졌고, 호텔 접대 레벨에 비례해 기분이 오르내렸다. 호텔이 품은 분위기, 커뮤니티 역시 요금의 포함 내역이었다. 잠만 자는 100달러보다 24시간 1분 1초를 즐기는 200달러, 300달러의 가치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호텔도 쇼핑이다. 젊은 열기엔 그저 쇼핑하지 못하는 시간 때우기라 무시했지만 이제는 호텔을 장바구니에 넣고 생각한다. ‘동네 뷰가 좋을까, 오션 뷰가 좋을까’, 혹은 ‘지중해식 뷔페를 고를까, 베지테리언 룸서비스를 받을까.’ 고민의 수가 늘고 소요 경비가 치솟는다. 숙박 전 노동의 피로도 덩달아 쌓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몸 편하겠다고 찾아낸 30대 쇼퍼홀릭 여행자의 신세다. 자정 이후 호텔만큼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쇼핑 스폿이 또 있을까. 돈 내는 대로 24시간 하루를 풀 세팅해주는 쇼핑이 또 어디에 있을까. 호텔은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쇼핑 아이템, 동시에 밤의 진정한 환락 스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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