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0엔 하우스와 0엔 생활은 오늘날 일본의 삶을 어떻게 자극할까.
못 하나 박지 않은 벽, 폐자재를 이어 쌓아올린 지붕. 겉에선 허술해 보이지만 주방도, 욕실도 갖추고 있다. 도쿄 키타 쿠 스미다 강변에 서있는 집. 스즈키, 미코 부부가 살고있는 이 곳은 '0엔 하우스'다. 말 그대로 집 짓는 데 돈 한 푼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것들은 주워왔고, 일부 가구와 주방 용품은 이웃에게 얻었다. 스즈키와 미코 씨는 생활도 무일푼으로 영위한다. 옷은 우연히 알게 된 의류 회사 샐러리맨에게서 얻어 입고, 식기와 수납 도구는 근처 상점가에서 알루미늄 통을 봉투 채로 받는다. 국도교통성의 정기적인 청소 작업, 아이들의 장난질에 대비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스즈키, 미코 부부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있다. 일 년 평균 수입 0엔의 삶임에도 그들은 '풍요롭다'는 말을 꺼낸다.
얼핏 국내의 귀농생활 혹은 전원생활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풍경은 사실 오늘날 일본 노숙 사정의 일면이다. 2004년 <TOKYO 0엔 하우스 0엔 생활>이란 책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건축가 사카구치 쿄헤이는 스즈키, 미코 부부를 비롯해 많은 노숙자들의 삶을 정밀하게 관찰했다. 파란 천막, 누런 박스로 가려진 길거리 주거지의 내부로 들어가 홈리스들의 생활 양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그리고 사카구치는 이들의 삶이 단순히 하루 동냥해 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나름의 생산과 소비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도출했다. 공터에 씨앗을 뿌리고 채소를 재배하는 사람들, 버려진 자동차 배터리에서 전기를 끌어오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스스로 태양열 발전판을 만들어 지붕에 설치한 이까지. 모두가 쉽게 간과해왔던 노숙의 실상은 사실 자급자족이 완벽하게 구현되는 모자람 없는 생활 형태였다.
0엔 하우스 그리고 0엔 생활자. 이 테마는 2004년부터 꾸준히 화제가 되고 있다. 사카구치 쿄헤이는 <TOKYO 0엔 하우스 0엔 생활>의 리포트를 바탕으로 소설 <스미다강의 에디슨>을 발표했고, 0엔으로 집 짓는 전시를 일본 국내는 물론 캐나다, 케냐 등에서도 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드라마 <사랑따위 필요없어, 여름>, 영화 <20세기 소년> 등을 연출했던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이 0엔 생활자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만든다. 5월 <My House>란 이름으로 공개 예정인 이 영화는 사카구치 쿄헤이의 책 <TOKYO 0엔 하우스 0엔 생활>과 <스미다강의 에디슨>을 원작으로 삼았다.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은 “2006년부터 영화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0엔 하우스, 0엔 생활자는 오늘날 생활주거의 한 형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My House>는 현재 츠츠미 유키히코 감독의 고향인 나고야에서 촬영 중이며, 흑백으로 완성돼 공개될 예정이다.
사카구치 쿄헤이는 노숙자들을 단순한 무주택자, 거지, 혹은 명예퇴직자들의 울타리 안에서 꺼내었다. 그가 <TOKYO 0엔 하우스 0엔 생활>에 써낸 노숙 생활의 실상은 도심의 수렵, 채집 생활의 한 형태다. 그리고 이는 건축의 본질, 현대 생활의 원점을 환기시킨다. 사카구치 쿄헤이는 “콘크리트의 몬스터가 되어버린 건축, 수단과 목적이 모두 사라진 임기응변의 삶 속에서 0엔 하우스, 0엔 생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도시의 빠른 생체 리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그들 나름의 삶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그 생활 방식이 기존의 도시 생활보다 더욱 건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길거리 한 구석에, 보이지 않는 천막과 신문지 더미 속에 우리가 놓쳐 온 생활의 원점이 숨어있었던 셈이다. 2012년 지금 0엔 하우스와 0엔 생활은 오늘날 일본의 삶을 어떻게 자극할까. 건강하지 못한 현재 삶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 천막 속을, 그리고 신문지 안을 자꾸 들여다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