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찬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현대인의 허기를 달래주는 식탁
신주쿠 골든가의 식당은 밤 12시에 문을 연다. 아메 야로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심야식당'은 자정 이후 테이블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소하지만 의미있고, 이렇다 할 사건 하나 없지만 따뜻한 에피소드가 식탁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시끌벅적한 저녁이 끝나고 신주쿠는 고요한 새벽을 맞는다. 도쿄 어느 평범한 주택가의 식당은 정오에 문을 연다. 1월 4일 첫 방영된 드라마 '고독한 구루메'는 일과 일 사이 공복을 채우기 위해 식도락 탐험을 즐기는 한 샐러리맨의 이야기다. 영업부터 발주, 납품에서 세일즈까지 거의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하는 탓에 홀로 점심을 떼워야 하는 주인공 이노카시라(마츠시게 유타카)는 마음을 여행하는 기분으로 식당을 찾는다. 간판을 보고, 메뉴를 확인해고, 위장의 상태를 체크한 뒤 배를 채운다. 모두가 일터로 향한 정오, 도쿄 어느 주택가의 거리는 정적의 테이블을 편다.
<고독한 구루메>는 쿠스미 마사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월간지 <PANJA>에 연재됐고, 이후 인기에 힘입어 2008년부터 주간지 <SPA!>에 비정기적으로 다시 연재되고 있다. 하나의 챕터가 하루의 에피소드로 이뤄졌으며, 매 챕터에 가게가 하나씩 등장한다. 소개되는 메인 메뉴도 하나다. 대부분의 요리 만화가 스케일과 화려함으로 이야기의 부피를 불리는 것과 달리 <고독한 구루메>는 소박하고 단출하게 이야기를 꾸린다. 최고의 요리가 아닌 최적의 요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역시 원작의 구성과 콘셉트를 그대로 취했다. 1회에서는 도쿄 에도 구의 몬젠나카쵸를 찾아갔고, 2회와 3회에서는 각각 토지마 구 코마고에와 이케부쿠로의 가게를 방문했다. 한 마디로 도쿄 서쪽과 동쪽의 심심한 마을을 무대로 삼은 셈이다. 요리의 치장을 덜고, 먹는 즐거움의 맨얼굴을 세세히 묘사하며, <고독한 구루메>는 한적한 마을의 정오를 담담히 훑는다.
혼자 식사를 할 때 식당의 풍경은 새롭다. 연인끼리, 혹은 다수의 친구와 밥을 먹을 때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작은 삽화처럼 하나둘 스쳐간다. 술을 마시며 전화로 하소연을 하는 옆 테이블 아저씨, 급한 마음에 주문만 먼저 해두고 가게를 나가는 청년, 가게마다 달라지는 점원의 멘트 등. 홀로이기에 확장된 시야가 숨어있던 일상의 조각을 포착한다. <고독한 구루메>가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도 이 방식이다. 주인공 이노카시라는 끊임없이 혼잣말을 한다. 별 의미 없이 흘러가는 말들이며, 음식과 직접 관련된 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들이 정오의 식탁을 풍성하게 꾸민다. 탄탄면, 볶음밥, 생선조림 등 메뉴도 그저 평범한 가정식 뿐이지만 <고독한 구루메>는 고독 속 풍요로움을 연출해낸다. 혼자와의 대화가 식사에 충실한 에피타이저가 된다. 드라마는 초미에 “사회에 구애받지 않고, 타인을 신경쓰지 않으며, 멋대로 자유롭게 공복을 채우는 일은 현대인에 주어진 최고의 평등”이라 말한다. 1인용 식탁의 멋, 그리고 행복을 아는 드라마. <고독한 구루메>는 어떤 만찬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현대인의 허기를 달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