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이 굴러, 굴러 마음의 언덕을 넘고...
아이는 마음이 바쁘다. 기찻길 가로막힌 선로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세상이 무심한 한숨을 쉴 때도 아이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린다. 동심의 시간이다. 지루해진 일상에 몇 번의 설레는 들썩임이 있다면, 그건 아마 아이의 성급함이 만들어 낸 엇박자가 아닐까. 어른이 되어선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빈틈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을 보며 이 균열의 시간을 떠올렸다. 오늘은 생각보다 길고, 내일은 생각보다 멀어 쉽게 잡히지 않는 미래는 어쩌면 이 작은 틈들의 조합일지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은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된 형제의 이야기다. 오사카에 둥지를 틀고 오순도순 살던 코이치(마에다 코키)와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 형제는 부모가 이별한 뒤 각각 카고시마와 후쿠오카로 이사했다. 코이치가 엄마와 함께 카고시마 외가로, 류노스케가 아빠와 함께 후쿠오카로 집을 옮겼다. 변함없던 일상에 생긴 큰 구멍이다. 이후 영화는 재회의 기적을 계획하는 두 소년을 보여준다. 후쿠오카와 카고시마에서 각각 출발하는 열차는 쿠마모토 부근에서 교차하며, 그 순간 기적을 일으킬 정도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렇게 믿는 코이치와 류노스케가 친구들과 무리를 만들어 여행길에 오른다. 무모한 아이들의 꿈이지만 이 계획은 그들의 시간을 타고 속력을 낸다.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화산재가 날리는 마을에서 태평하게 살아가는 카고시마 사람들, 갑작스레 죽어버린 친구의 강아지, 이유 없이 일을 그만두는 아버지, 그저 밍밍한 맛의 카고시마 전통 과자, 애매하게 남는 포테토칩의 부스러기들. 코이치는 수도 없이 ‘이해할 수 없다’ 중얼거린다. ‘언젠가 알게 될 거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게 대체 언제냐’고 화도 낸다. 그리고 기적을 꿈꾼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코이치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시간을 믿고 달리는 일 뿐이다. 영화는 아이들이 달리고,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틈새를 내비친다. 그리고 그 틈새 속에 우리가 모르던 기적이 숨어있다. 아련하고 간절한 순간이다.
기적은 실패한다. 죽은 강아지를 되살리려는 소원도, 가족을 다시 뭉쳐달라는 바람도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을 달리게 한 시간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기적은 일상을 바꿀 대사건이 아니다. 그저 포테토칩 부스러기처럼 의미 없는 것들, 쓸모없는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찰나의 드라마다. 영화의 마지막 쿠루리가 부른 주제곡 <기적>은 노래한다. “말들이 굴러, 굴러 마음의 언덕을 넘는다.” 아이들의 무모한 여행이 보여준 기적도 실은 사소한 진심이 모이고 모여 일군 작지만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참 바보 같게도 우리는 기적을 살면서 기적을 잊는다.